1독서: 욥 9,1-12.14-16 <사람이 하느님 앞에서 어찌 의롭다 하겠는가?>
복음: 루카 9,57-62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제목: 뒤돌아보지 않는 길
1. 서른아홉에 택한 동굴
서기 382년, 예로니모 성인은 서른다섯의 나이에 다마소 1세 교황의 비서가 되었습니다. 로마에서 큰 명예와 편안함을 누릴 수 있었으나, 교황이 선종하자 386년에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서른아홉의 나이에 베들레헴의 거친 동굴로 들어갔습니다. 성인은 그리스어 신약과 히브리어 구약을 직접 번역하여 405년, 쉰여덟에 교회 공식 라틴어 성경인 『불가타』를 완성했습니다. 대업을 이룬 뒤에도 세상으로 돌아가지 않고, 숨을 거두는 일흔셋까지 동굴에 머물며 성경 연구에 평생을 바쳤습니다.
성인은 “성경과 성체성사는 모두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했습니다. 미사 때 모시는 주님의 몸처럼, 매일 펼치는 성경 말씀 또한 우리 영혼을 살리는 참된 생명의 양식입니다. 성인은 높은 학식을 앞세우지 않고, 오직 하느님의 말씀 앞에 자신을 온전히 비워냈습니다.
2. 뒤돌아보지 않는 결단
예로니모 성인의 모습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요구하신 결단과 깊이 이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따르겠다고 나선 이들에게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루카 9,58)라며 단호한 기준을 밝히십니다.
가족과 먼저 작별하게 해 달라는 이에게도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루카 9,62)고 말씀하셨습니다. 밭을 가는 농부가 뒤를 돌아보면 고랑은 비뚤어집니다. 신앙의 길은 지나간 과거의 미련이나 세상의 헛된 안전장치에 곁눈질하지 않는 온전한 투신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고백처럼, 우리는 그리스도를 얻으려 세상의 기준과 기득권을 과감히 내려놓아야 합니다(필리 3,8-9 참조).
3 .신비 앞에 무릎 꿇는 겸손
주님을 따르려 할 때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교만입니다. 욥은 하느님의 크신 위엄 앞에서 “사람이 하느님 앞에서 어찌 의롭다 하겠는가?”(욥 9,2-3)라며 자신의 무력함을 깊이 고백합니다.
하느님은 인간의 좁은 계산으로는 다 헤아릴 수 없는 거룩한 신비 그 자체이십니다. 아무리 옳다고 여겨도 결국 재판관이신 하느님 앞에 엎드려 자비를 구할 수밖에 없습니다(욥 9,15 참조). 성 베네딕도는 겸손의 첫 단계로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과 경외를 늘 눈앞에 두어 잠시도 잊지 않는 것”을 꼽았습니다. 창조주의 위엄과 피조물의 한계를 올바로 인정할 때 비로소 하느님의 자비에 모든 희망을 걸게 됩니다.
동굴로 들어간 예로니모 성인의 헌신, 쟁기를 잡는 복음의 결단, 하느님 앞에 엎드린 욥의 겸손은 모두 ‘자기 비움’으로 모입니다. 내 손에 쥔 집착을 내려놓고 삶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실 때, 불안이 사라지고 참된 평화와 구원의 은총이 찾아옵니다. 주님의 말씀과 자비 안에서 흔들림 없이 하느님 나라의 증인으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