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의 생애는 성 그레고리오 대교황(540-604)이 쓴 대화집 제2권을 통하여 우리에게 전해집니다. 성 베네딕도는 480년경 이탈리아 노르치아(Norcia)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성녀 스콜라스티카가 성인의 쌍둥이 누이동생이며 훗날 여성 수도공동체를 세워 오라버니와 함께 하느님을 찾는 여정을 동반했습니다. 약관의 나이로 로마 유학길에 올랐던 성인은 환락과 퇴폐가 만연한 세속 사회에 크게 실망하고 하느님의 부르심에 따라 엔피데(Enfide)라는 작은 산골 마을로 떠났습니다. 거기서 일으킨 기적으로 세간의 이목이 쏠리자 성인은 수비아코(Subiaco) 계곡의 한 동굴(훗날 사크로 스페코 Sacro Speco, 거룩한 동굴로 불림)에 은둔하며 철저한 침묵과 고독 속에서 3년간 은수생활을 했습니다.

하느님의 깊은 신비를 체험한 성 베네딕도의 명성은 사방으로 퍼져나갔고 인근의 비코바로(Vicovaro) 수도원 원장으로 초빙되어갔습니다. 그곳에서 성인은 수도공동체의 느슨한 규율과 수행을 바로 세우고자 애를 썼지만 수도승들의 반대에 부딪혔고 살해 위협까지 당했습니다. 결국 다시 수비아코로 돌아온 성인은 12개의 수도공동체를 설립하여 제자들과 함께 하느님을 찾는 여정에만 매진했습니다. 하지만 인근 본당 신부의 시기심 어린 훼방으로 수도생활에 중대한 위기가 닥쳐오자, 성인은 수비아코를 떠나 몬떼까시노(Montecasino)로 떠났습니다.

몬떼까시노에 새로운 터를 잡은 성 베네딕도는 제자들이 극단적인 수행을 지양하고 중용의 길을 걸어가면서 하느님을 찾을 수 있도록 수도규칙을 저술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서방 그리스도교 수도생활의 초석이 되는 베네딕도 수도규칙입니다. 성인은 547년경 귀천하였고 그의 후학들은 이민족의 침입으로 붕괴된 서유럽 문명을 복구하고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데 크나큰 공헌을 했습니다. 이러한 업적을 기리고자 1964년 10월 24일 교황 바오로 6세는 성 베네딕도를 유럽 수호자로 선포하였습니다.

로마 전례력에 따른 성 베네딕도 축일은 7월 11일입니다. 하지만 성 베네딕도회 수도공동체에서는 3월 21일에 또 한 번 사부의 축일을 거행합니다. 보통 성인들은 돌아가신 날을 천상 탄일이라 하여 축일로 경축합니다. 성 베네딕도가 귀천한 날은 3월 21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성인이 귀천한 후 얼마 되지 않아 몬떼까시노 수도원은 이민족에 의해 파괴되었고 성인의 무덤 역시 황폐화되었습니다. 7세기경 이를 안타깝게 여긴 프랑스 플류리-쉬르-루아르(Fluery-sur-Loire) 수도원의 아빠스가 성 베네딕도와 성녀 스콜라스티카의 유해를 프랑스로 옮겼습니다. 무덤을 이장한 날이 7월 11일이었기 때문에 또 하나의 축일이 생겨난 것입니다. 이 축일을 성 베네딕도의 이장 축일(Translatio)이라 불렸는데, 3월 21일은 항상 사순시기 한가운데 오기 때문에 점차 이 날(7월 11일)을 성 베네딕도 축일로 더 크게 지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