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성모님의 여러 호칭 가운데 교회의 어머니라는 호칭은 가장 최근에 교회가 성모님께 헌정한 것입니다. 교황 바오로 6세께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 헌장을 통하여 성모님께 이 호칭을 헌정했고, 2018년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성령 강림 대축일 다음 날을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로 제정했습니다.

성모님께서 교회 안에서 차지하는 탁월한 지위는 다만 구세주를 낳고 길러낸 공덕에만 기인하지는 않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나오듯이 성모 마리아는 그리스도 수난의 증인이었습니다. 아들이 걸으신 비움의 길을, 어머니 또한 순종으로 뒤따랐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가 그러했듯이, 성모 마리아의 삶 역시 십자가 위에서 완성되는 거룩한 순명의 여정이었습니다. 한평생 “피아트(Fiat)”, “그대로 이루어지소서”라는 응답으로 하느님께 온 존재를 내어맡기셨던 우리 어머니. 성령의 빛으로 아들을 태중에 모시던 신비의 순간부터, 핏빛 서린 십자가 아래에서 아들의 죽음을 비수가 영혼을 꿰뚫는 고통과 함께 겪어내기까지 성모님의 대답은 흔들림 없는 영원한 ‘예’였습니다. 성모님은 눈앞의 시련을 인간의 생각으로 거부하거나 회피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고통스러운 현실을 기도로써 껴안으며, 그 메마른 땅 위에서 하느님의 뜻이라는 생명수를 찾아내셨습니다. 날카로운 칼이 당신의 영혼을 꿰뚫는 예리한 아픔 속에서도, 하느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일을 결코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이렇게 자신을 완전히 비워내어 “예”라는 대답으로 채우셨기에, 성모님은 마침내 부활의 증인이 되셨고, 모든 믿는 이들의 어머니가 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새로운 시대적 도전에 직면한 교회를 자모이신 성모님께 의탁합니다. 가톨릭교회는 오랫동안 위계적이고 가부장적이며 권위적이라는 오해 혹은 오명을 쓰고 있습니다. 제 시각이 비관적인지 몰라도, 이 시대의 가톨릭교회를 돌아보면 팔팔한 아버지가 아니라 점점 노쇠해 가는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나이가 든다고 어머니의 모성마저 사그라드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젊은 엄마의 야무지고 암팡진 모성과는 다른 넉넉하고 푸근한 모성이 있을 것입니다. 교회가 풍상이 비껴간 고목처럼 아늑하고 시원한 그늘을 지친 영혼들에게 드리울 수 있도록 교회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께 전구를 청합니다. 아울러 우리 역시 그리스도 수난의 증인으로서 성모님처럼 묵묵히 주님의 곁을 지킬 수 있는 용기와 끈기를 주님께 청하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