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9.25.금요일 한가위

요엘2,22-24.26ㄱㄴㄷ 묵시14,13-16 루카12,15-21

하늘에 보물을 쌓는 삶
“공부하라, 찬양하라, 현재를 살라, 나누라”

“하느님, 우리를 어여삐 여기소서.
우리에게 복을 내리옵소서
어지신 얼굴을 우리에게 돌리소서.”(시편67,2)

저는 요즘 공부하는 재미로 삽니다. 공부중의 공부가 하느님 공부, 나를 아는 겸손공부입니다. 공부에는 나이가 없습니다. 눈만 열리면 온통 스승들이요 공부해야할 대상들입니다. 밤마다 매일 강론 쓰는 시간 역시 공부하는 시간입니다. “공부하다 죽어라” 불가의 혜암 선사가 제자들에게 했다는 말씀도 잊지 못합니다. 기도하다, 공부하다. 일하다 죽으면 <주님의 전사戰士>다운 <전사戰死>이겠습니다. 옛 현자의 말씀도 좋은 공부가 됩니다.

“역사를 배우는 까닭은 오늘을 제대로 보내기 위해서다. 오늘을 제대로 마쳐야 어제와 내일을 바로 보게 된다.”<다산>
“미래를 알고 싶다면 과거를 살펴보라”<명심보감>
이래서 역사 공부가, <내 삶의 성경 렉시오 디비나> 공부가 그리도 중요합니다. 어제 소설에서 읽은 몇 마디가 생각나니 이 또한 좋은 공부가 됩니다.

“민준은 친구를 만나고 처음으로 그가 잘 생겼다는 생각을 했다. 생김새 때문이 아니다. 빛이 나서다.”
희망과 꿈, 기쁨으로 빛이 날 때 진정 잘 생겼다 할 수 있겠습니다.
“세상에는 허겁지겁 먹는 밥이 있고 마음을 다해 정성스레 먹는 밥이 있어요. 나는 이제 소박한 밥을 정성스레 먹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나를 위해서요.”
“‘하루를 잘 보내는 건 인생을 잘 보내는 것’이라고 어딘가에서 읽은 문구를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 것이다.”

밥부터 정성스레 먹는 공부가, 하루하루 깨어 최선을 다해 공부하는 마음으로 사는 일이 제일임을 깨닫습니다. 이제 본격적인 가을의 시작입니다. 특히 <가을인생들>에게 절실히 와 닿는 공부의 계절, 기도의 계절입니다. 예전 <가을공부>란 자작시도 생각납니다.

“가을공부에 여념이 없습니다
참 넉넉하고 편안합니다
아무 욕심이 없습니다
욕심이 있다면 잘 살고 싶은 청정욕淸淨慾 뿐입니다
가을 들꽃들 자연스레 어우러진 내 마음의 빈 뜨락입니다
봄에는 봄, 여름에는 여름, 가을에는 가을이, 겨울에는 겨울이 되어 삽니다
하루에도 아침엔 봄 희망, 낮에는 여름 정열,
저녁에는 가을 초연함, 밤에는 겨울 침묵을 삽니다
지금 제일 중요한 공부는 가을공부입니다
보고 듣고 느끼고 맛보고 냄새 맡으며 영적 오관 활짝 열고
가을을 배우는 학인學人입니다”<2000.10.2.>

무려 26년 전 여기서 가을인생 시기에 썼던 글입니다. 오늘은 한민족 최대의 명절인 한가위 추석입니다. 중국보다 오래된 삼국시대인 신라 때 부터 시작된 명절이라 합니다. 오늘 추석에 공부할 내용은 <하늘에 보물을 쌓는 삶>입니다. 오늘 말씀을 바탕으로 세 측면의 공부를 나눕니다.

둘째, 하느님을 찬양하는 삶입니다.
이 또한 하늘에 보물을 쌓는 삶입니다. 오늘 복음의 어리석은 부자는 <하늘을 향한 창>이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내 중심이 아닌 하느님 중심의 무사한 삶 모두가 하늘에 보물을 쌓는 삶입니다. 수확의 기쁨을 신나게 노래하며 하느님께 감사의 찬양을 드리라는 요엘 예언자를 통한 주님의 말씀이 추석에 잘 어울립니다.
“시온의 자손들아, 주 너희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고 기뻐하여라. 타작마당은 곡식으로 가득하고, 확마다 햇포도주와 햇기름이 넘쳐흐른다. 너희는 한껏 배불리 먹고, 너희에게 놀라운 일을 한, 주 너희 하느님을 찬양하리라.”
새삼 우리 수도자들이 평생 하루하루 날마다 바치는 찬미와 감사의 시편성무일도와 미사 공동전례가 하늘에 보물을 쌓는 참 고마운 수행임을 깨닫게 됩니다.

셋째, 오늘 지금 여기 현재를 사는 삶입니다.
라틴어 카르페 디엠(Carpe Diem;현재를 잡아라)이 이를 뜻합니다. 환상이나 허영, 허욕의 거품이 걷힌 본질적 깊이의 투명한 삶이요 이 또한 하늘에 보물을 쌓는 삶입니다. 늘 심판의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살 때 햇빛에 안개 걷히듯 걷히는 환상이나 허영의 안개들입니다. 이래서 사막교부들은 물론 성 베네딕도의 이구동성의 말씀은 “죽음을 날마다 눈앞에 환히 두고 살라”는 것이었습니다. 요한 묵시록의 주님 말씀이 더욱 오늘 여기서 본질적 깊이의 삶을 살도록 우리를 부추깁니다.

“이제부터 주님 안에서 죽는 이들은 행복하다고 기록하여라. 그렇다. 그들은 고생 끝에 이제 안식을 누릴 것이다. 그들이 한 일이 그들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오늘이 내일입니다. 오늘 잘 살면 내일은 내일대로 잘 됩니다. 걱정할 것 없습니다. 이보다 더 좋은 선종준비도 없습니다. 오늘 지금 여기서 허영이나 환상이 걷힌 본질적 깊이의 무사無私한 <섬김의 삶>에 충실할 때 영원한 안식처인 주님 사랑 안에 머무르게 되고, 그가 한 일은 모두가 하늘에 보물을 쌓는 일이 됩니다.

넷째. 나누는 삶, 베푸는 삶입니다.
이 또한 하늘에 보물을 쌓은 참 좋은 삶입니다. 지옥에는 한계가 없다 합니다. 무한한 탐욕에 눈멀 때 바로 거기가 지옥입니다. 예수님의 충고와 더불어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가 우리의 무지의 탐욕을 일깨웁니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요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인명은 재천이요, 하느님께 달려 있는 우리의 생명입니다. 어리석은 부자는 완전히 탐욕에 눈이 멀었습니다. 그에게는 자비와 지혜의 눈이 없었습니다. 자기도취의, 자기착각의 감옥에 갇힌 수인입니다. 땅에 보물을 쌓다 보니 하느님과 이웃에 고립단절된 삶입니다.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자아도취의 독백에 이은 주님의 말씀과 충고가 우리에게는 참 좋은 가르침이자 깨우침이 됩니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

복음의 무지의 탐욕에 눈먼, 땅에 보물을 쌓기에 여념이 없는 어리석은 부자는 보편적 인간 현실이요 우리 모두의 가능성입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부자는 우리의 무지를 일깨우는, 하늘에 보물을 쌓는 일에 전념하라는 <반면교사>가 됩니다. 참으로 하늘에 보물을 쌓는 지혜로운 삶을 살고 싶습니까?

첫째. 공부하십시오.
하느님을 알고 나를 아는 제일 중요한 평생공부가 겸손입니다.
둘째, 하느님께 감사의 찬양을 드리십시오.
셋째, 오늘 지금 여기서, 허영이나 환상이 걷힌 본질적 깊이의 삶을 사십시오.
넷째, 부단히 나누고 베푸는 삶을 사십시오.

참으로 하늘에 보물을 쌓는 지혜로운 행복한 삶입니다. 특히 오늘 추석 하루 이렇게 사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거룩한 미사은총이 참 좋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뿌릴 씨를 들고 울며 가던 사람들,
곡식단 안고 환호하며 돌아오리라.”(시편126,6).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