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9.26.
연중 제25주간 토요일
코헬11,9-12,8 루카9,43ㄴ-45
하느님의 집을 향한
<귀가의 여정>
“허무에 대한 답은 파스카 예수님뿐이다”
“새벽부터 넘치도록 자비를 베푸시어
우리 한생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시편90,14)
어제 시작한 제1독서 코헬렛은 오늘로써 끝납니다. 허무로서 시작하여 허무로 끝납니다. 중간중간 하느님이 나오지만 기도나 고백은 없습니다. 도대체 <희망의 빛>이 보이지 않습니다. 오늘 코헬렛의 마지막은 “젊음을 즐겨라-늙음과 죽음-맺음말”로 이뤄졌습니다. 구구절절 마음을 휘어잡습니다.
“젊은이여, 네 젊은 시절에 즐기고,
젊음의 날에 네 마음이 너를 즐겁게 하여라.
네 마음이 원하는 길을 걷고, 네 눈이 이끄는 대로 가거라.
다만 이 모든 것에 대하여
하느님께서 너를 심판으로 부르심을 알아라.
네 마음에서 근심을 떨쳐 버리고 네 몸에서 고통을 흘러 버려라.
젊음도 청춘도 허무일 뿐이다.”
젊음을 즐기되 하느님의 심판을 결코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론은 허무로 끝납니다. 이어지는 노년과 죽음의 묘사가 적나라하고 실감이 납니다. 빛나고 활력이 넘쳤던 젊음은 사라지고 무너지고 망가진 노년의 모습에 이어 죽음입니다.
“은사슬이 끊어지고, 금 그릇이 깨어지며, 샘에서 물동이가 부서지고.
우물에서 도르래가 깨어지기 전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먼지는 전에 있던 흙으로 돌아가고 목숨은 그것을 주신
하느님께로 되돌아간다.“
화장터에서 납골을 모아 후에 땅에 묻거나 뿌릴 때 절절히 와닿는 내용들입니다. 누구나 피할 수 없는 늙음과 병과 죽음의 생노병사生老病死의 인생사고四苦입니다. 그리고 결론은 어제 서두와 똑같습니다.
“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모든 것이 허무로다.”
영혼의 병, 허무가 골수까지 깊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삶은 선택입니다. 선택의 은총입니다. 고해 인생 중에도 고해가 아닌 축제를 선택해 <축제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수확의 계절이자 축제의 계절, 가을이 가르쳐 주는 진리입니다. 텅 빈 허무가 아니라 텅 빈 충만을 살아야합니다.
허무의 가면을 벗기면 사랑의 충만 하느님이 현존입니다. 어찌 보면 허무는 자비하신 하느님의 축제인생으로의 <초대장>일 수 있습니다. 어제 피정을 끝나고 귀가하던 어느 자매의 꽃같은 얼굴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기쁨으로 웃을 때는 모두가 꽃같이 예쁜 얼굴들입니다.
“올 추석에는 잘 익은 노 수사님을 뵈었다.
벼이삭 너무 튼실해서 땅에 닿을 것 같은 그런 분!
그분이 나에게 웃음꽃을 주었다.
나도 나에게 웃음꽃을 주겠다고 다짐했다.
고맙습니다. 신부님!
신부님께 받은 <웃어요> 평생 간직하며 자신에게 그리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웃음이 되겠다고 다짐을 해보아요.
잘못하더라도 노력은 해보리라고…감사합니다.”
하느님의 집, 수도원에 1박2일 피정동안 주님을 만난 분의 허무의 어둠이 완전히 걷힌 분의 고백입니다. 오래 전 이때쯤의 세 편의 자작시가 생각납니다.
내 사랑하는
님의 얼굴은 하늘같이 맑고
님의 눈은 별처럼 빛나고
님의 영혼은 가을 들꽃처럼 은은하고
님의 마음은 단풍 물든 넉넉한 뜨락이고
님의 몸은 나무 향기처럼 편안하다
때로 아름드리 소나무
내 사랑하는 님을 안 듯 껴안아 본다”<내 사랑하는 님은; 2000.10.3.>
또 하나 배초향 야생화 들꽃 연보라 <배초향>을 보며 쓴 시입니다.
“가난하지 않다, 외롭지 않다, 자리는 문제가 아니다
없으면 없는 대로 나눌 것 있다
작고 초라한 가을 들꽃 연보라 배초향꽃 무리들
향기만은 깊고 은은하여
벌 손님들 맞이하기 바쁘다”<배초향; 2000.10.8.>
26년후 지금은 벌들도 사라져 보이지 않습니다. 예전 <메꽃>의 자리에는 곱고 빨간 <유홍초>꽃들이 수도원 뜨락을 덮어갑니다.
“이 가지 저 가지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하늘 가는 여정의 다리로 삼아
빨간색 예쁘게
하늘 사랑 꽃 피어내며
하늘로 하늘로 오르는 사랑의 유홍초꽃들!”<유홍초; 1997.9. >
역시 수도원의 요즘 가을은 둥글게 익어가는 배 열매들과 더불어 축제의 계절입니다. 저절로 터져 나오는 “하느님의 사랑을 영원토록 노래하리라”는 시편 구절입니다. 허무에 대한 궁극의 답은 하느님뿐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분명히 하면 죽으시고 부활하신 파스카의 예수님뿐입니다. 무지의 어둠을 몰아내는 말씀의 빛, 파스카의 예수님입니다. 바로 오늘 제1독서 코헬렛의 허무에 대해 오늘 복음이 답을 줍니다.
“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 들어라,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파스카 예수님은 당신의 수난과 부활을 두 번째로 예고하십니다. 복음의 제자들은 놀랄뿐 이해하지 못하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복음과 더불어 강론 서두와 말미에 인용한 시편90장이 코헬렛의 허무에 대한 답을 줍니다.
고해같은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텅 빈 허무>가 아닌 <텅 빈 충만>의 행복한 축제인생을 살아야합니다. 이것은 우리 믿는 이들의 너무 당연한 의무이자 책임이요 권리입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허무와 무지의 병에 대한 최고의 처방은 너무나 고마운 파스카 주님을 모시는 이 거룩한 성체성사 미사전례입니다.
“주님, 당신께서는 대대로
저희에게 안식처가 되셨나이다.”(시편90,1).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