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독서: 욥 19,21-27 <나는 알고 있다네, 나의 구원자께서 살아 계심을.>
복음: 루카 10,1-12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를 것이다.>
제목: 작은 길의 승리
1. 욥의 신앙을 가진 데레사
1897년 프랑스 리지외 가르멜 수도원의 스물네 살 젊은 수녀 데레사는 결핵의 고통과 지독한 영적 어둠 속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수도원 밖을 나가지 못했던 이 작은 수녀를 교회는 온 세상 선교의 수호자이자 교회 학자로 받들고 있습니다.
그 바탕에는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을 붙들었던 욥의 신앙이 놓여 있습니다. 욥은 극단적인 파멸 속에서 외쳤습니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네, 나의 구원자께서 살아 계심을. 그분께서는 마침내 먼지 위에서 일어서시리라. 내 살갗이 이토록 벗겨진 뒤에라도 이 내 몸으로 나는 하느님을 보리라.”(욥 19,25-26)
히브리어로 ‘고엘’인 구원자는 본래 빚이나 억울함으로 모든 것을 잃은 피붙이를 위해, 자기 것을 내어놓고 빼앗긴 권리와 생명을 되찾아 주는 가장 든든한 친족 보호자를 뜻합니다. 욥은 내 편이신 주님이 살아 계시며, 마침내 그분을 뵈옵겠다는 부활의 희망을 고백했습니다. 데레사 성녀 역시 육신의 시련 속에서 이 욥의 신앙을 그대로 살아냈습니다.
2. 보편 선교와 일치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세상 속 선교사로 부르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다른 제자 일흔두 명을 둘씩 짝지어 보내셨습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루카 10,2)
창세기 10장에 나오는 온 세상 민족의 수가 바로 일흔둘입니다. 일흔두 제자의 파견은 세상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려는 교회의 보편적 사목을 뜻합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꼭 둘씩 보내셨습니다. 복음 선포는 개인의 고집이 아니라, 서로를 붙들어 주는 형제적 사랑과 일치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세상 속으로 들어간 제자들의 첫 무기는 강요가 아닌 평화였습니다.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루카 10,5)
평화를 받아들이면 은총이 머물고, 거절하면 나에게 되돌아옵니다. 일꾼은 결과에 얽매이지 않고 주님의 섭리만을 믿고 걸어갑니다.
3. 사랑의 작은 길
선교는 거창한 일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소화 데레사는 수도원의 사소한 일과 질병의 고통, 대하기 힘겨운 동료에게 건네는 미소 하나를 사랑으로 봉헌했습니다. 성녀는 깊이 깨달았습니다.
“교회 안에서 저의 성소는 바로 사랑입니다.”
대단한 행동이 세상을 구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욥처럼 하느님을 나의 구원자로 믿는 신뢰, 그리고 이웃에게 평화를 건네며 버텨내는 작은 사랑이 가장 위대한 선교입니다. 오늘도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묵묵히 사랑을 실천하며 걸어가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