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 3,22-29 루카 11,27-28
하느님 자녀의 참 행복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들!”
“거룩하신 그 이름 자랑하여라.
주님을 찾는 마음은 기뻐하여라.”(시편105,3)
주님 자랑이 제 기쁨이며 행복입니다. 주님을 자랑하는 마음으로 날마다 쓰는 강론입니다. 누구나의 소망이 행복일 것입니다. 누구나 행복하게 살라고 불림 받은 선물 인생입니다. 행복은 우리의 권리이며 책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하게 살아야합니다. 언젠가의 행복이 아니라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행복하게 살아야합니다. 어제 금요일 오후에는 일곱 분에게 면담성사를 드렸고, 말씀처방전의 보속에 이어 요즘 늘 하듯이 하나의 보속을 추가했습니다.
“지금부터 자기 전까지 웃으며 행복하게 사세요!”
이중 30년 이상 알고 지낸 70대 부부도 고백성사를 봤고, 십자가의 예수님과 배꽃 그림의 배경으로 꽃처럼 환하게 웃는 사진도 찍어 전송하며 주고받은 메시지입니다. 이 자매님은 30년 이상 그 힘들었던 시절 매년 영명축일 전후로 주님을 찾듯 저를 찾았고 끝까지 가정을 지켰던 분입니다. 고진감래, 그 결과 사랑도 익어 행복의 열매를 주렁주렁 맺게 되었습니다.
“사진처럼 늘 멋지고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신혼부부 같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신부님, 늘 감사드립니다. 신부님 사랑이 저희 부부에게 차고 넘칩니다. 감사드려요. 사랑합니다.”
한 분 자매님은 꽃꽂이차 방문했고 저는 환호하며 기분 좋은, 행복하게 하는 덕담德談을 드리며 감사했습니다.
“꽃보다 아름다운 분이 꽃을 들고 오셨네요! 감사합니다.”
행복 역시 선택이요 훈련이요 습관입니다. 10월은 축제의 계절, 고해인생이 아닌 행복한 사랑의 <축제인생>을 살아야합니다. 오늘 10월10일은 제1회 <성 요셉의 배밭 친구들 월례미사>가 있는 역사적 축제날이기도 합니다. 즐겨 외우는 자작 <행복기도> 한 대목도 생각납니다.
“곳곳에서 발견하는
기쁨, 평화, 감사. 행복이옵니다
살 줄 몰라 불행이요 살 줄 알면 행복임을 깨닫나이다”<2018.10.16.>
아주 오래 전 두 편의 자작시도 나눕니다. 여기서 38년 정주하는 동안 참 많이 썼던 시들의 주제는 거의가 하느님을 바탕으로 한 <사랑>과 <행복>이었고, 이제는 <시의 숲>을 이룬 듯, 시의 숲에서 살아가는 기분입니다. 시(詩)의 어원대로 “말씀(言>의 사원(寺)”인 수도원, 주님의 집에서 살아가는 행복한 삶입니다.
“햇님 맞이하는 기쁨으로
낮을 살고
달님, 별님 맞이하는 기쁨으로
밤을 사는
산의 행복, 당신은 아시는지요?<산의 행복; 1998.10.20.>
“잘려지면 잘려진 대로
그 낮은 상처의 자리에서
기쁨의 꽃 피어내는 들꽃들의
눈물어린 삶이여
아름다운 삶이여
슬픔과 기쁨은 둘이 아니라 하나다
슬픔의 상처마다 기쁨의 꽃 피어내도록 하라
바로 거기가 행복의 자리다”<기쁨의 꽃; 1998.10.27.>
28년전 50세 때 시이니 감개무량합니다. 사랑하면 누구나 유치해지고 시인이 되나 봅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랑과 행복의 원천에는 하느님이 존재함을 깨닫습니다. 하느님 없이 참회개도, 참겸손도, 참사랑도, 참기쁨도, 참행복도 없습니다. 다음 시편 고백 그대로입니다.
“하느님께 아뢰옵니다. ‘당신은 나의 주님, 당신만이 나의 행복이십니다.”(시편16,2)
“나의 힘이신 하느님! 당신을 사랑합니다.”(시편18,1)
자주 고백성사 때 보속으로 써드리는 말씀처방전이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고맙게도 참행복의 정체를 환히 보여줍니다. 어떤 여자와 예수님이 주고받은 단 두 절의 짧은 복음이지만 참행복의 비결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보물같은 말씀입니다.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합니다.”
<오히려>라는 말마디가 함축하는바 깊고 오묘합니다. 부연하면 ‘물론 나에게 젖을 먹인 어머니는 행복하다, 그러나 오히려 나의 어머니이기에 행복한 것이 아니라, 평생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킨 마리아 어머니이기에 참으로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마리아 성모님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며 <예스-맨yes-man>으로 사신 분도 없을 것입니다.
아드님 예수님처럼 평생, 시종여일, 하느님을 말씀을 듣고 지키면서 사랑으로 자기를 비우는 <순종과 비움의 여정>에 항구했던 마리아 성모님이셨습니다. 그러니 세상에 부러워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묵묵히 실천하면 누구나에게 주어지는 참행복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이래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묵상하고-기도하고-관상하고-실천하는> 렉시오디비나 성독수행의 훈련과 습관화가 절실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거룩한 수행이 우리를 진짜 행복하게 할 뿐만 아니라 깊어가는 믿음과 더불어 우리를 참으로 내적으로 자유롭게, 부요하게 합니다. 말씀의 실천수행과 더불어 하느님 향한 신망애信望愛의 삶도 날로 깊어집니다. 무엇보다 믿음의 부자가 됩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이 정확하고 참으로 은혜롭습니다. 우리의 참된 신원을, 참된 자유와 행복의 비결을 확인해 줍니다.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와 하나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다 그리스도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유다인도 그리스인도 없고,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도 여자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속한다면, 여러분이야말로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상속자입니다.”
세상에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참행복을 능가하는 것은 없습니다. 평생성사인 날마다의 성체성사 미사은총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며 자랑스러운 하느님의 자녀로서 살게 해 주십니다. 미사중 성체를 모실 때, <그리스도의 몸>하면 <아멘!>하고 힘차게 대답하고 모시는 장면을 저는 미사중 가장 아름다운 장면으로 꼽으며 늘 감동합니다.
<그리스도의 몸>대신 <그리스도의 평화>, <그리스도의 사랑>, <그리스도의 행복>으로 바꿔도 무방합니다. 새삼 성체성사의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그리스도의 평화로, 사랑으로, 행복으로, 즉 또 하나의 그리스도로 살게 함을 깨닫습니다.
“주님과 그 권능을 구하여라.
언제나 그 얼굴을 찾아라.”(시편105,4).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