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페1,15-23 루카12,8-12
깨달음의 여정
“무지에 대한 답은 성령(聖靈)뿐이다!”
“천사들보다는 못하게 만드셨어도.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 주셨나이다.”(시편8,6)
참으로 본당에서 영적 삶에 필요한 단체는 <성체조배회>와 <성령기도회>임을 깨닫습니다. 본당의 성체조배회 모임장소가 카페로 변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개탄한 일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마음의 <생명의 초원>이 날로 마음의 <죽음의 사막>으로 변하는 <돈과 일, AI> 중심의 자본주의란 천박한 문명의 야만시대라는 역설적 현실 앞에 이 두 신심의 영적 단체의 존재는 참으로 절박하다는 느낌이듭니다.
하늘에는 별, 땅에는 꽃, 사람 마음 안에는 사랑의 시(詩)입니다. 누구나 사랑하면 시인이 됩니다. 별들이 없는 하늘, 꽃들이 없는 세상, 사랑의 시들이 없는 사람들,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시의 힘, 노래의 힘입니다. 사실 우리 가톨릭교회 신자들은 아름다운 시편들을 공동전례기도로 바치며 살고 있습니다. 시편들이 없으면 전례도 이뤄지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찬미와 감사의 시편은 물론 모든 아름다운 시들의 저자는 누구일까요?
사랑과 진리의 성령입니다. 성령의 은총에 의한 <깨달음의 여정>을 살아가는 명품신자들입니다. 깨달아가면서 주님을 닮아 날로 지혜로워지고 자비로워지고 자유로워집니다. 무지라는 마음의 고질병에 대한 답도 사랑의 성령뿐입니다. 참으로 사랑의 성령이, 사랑의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고 평화롭게 합니다. 바로 파스카의 예수님 자체가 사랑의 성령이요 사랑의 진리입니다. 벌써 3년째 기상과 동시 만세칠창과 더불어 바치는 두 자작 좌우명시 역시 성령의 선물입니다.
“산 앞에 서면
당신 앞에 서듯 행복하다
꽃같은 하루 꽃같이 살자, 시같은 하루 시같이 살자”<산 앞에 서면; 2024.9. >
“평생 꽃같은 아내 없어도
언제나 나를 반가이 맞이하는 주님의 집 집무실안
불암산 배경의 배꽃 만발한 그림에, 꽃같은 주님 늘 함께 계시니
이 행복에 삽니다”<꽃같은 주님; 2024.4. >
29년 전 49세 때 여기에서의 다음 두 자작시도 생각납니다.
“푸른 하늘 흰 구름 하얀 그리움
개망초 하얀꽃 하얀 그리움
눈덮인 하얀길 하얀 그리움
당신 향한 그리움 하얀 그리움”<하얀 그리움; 1997.10.28.>
“그리움이 깊어 시리도록 푸른 하늘이 되었다
영원한 하늘이 되었다
침묵의 하늘이 되었다
영원히 바라보는 눈빛이 되었다
하느님의 눈이 되었다
나는!”<나는; 1997.11.27.>
11월 시리도록 푸른 늦가을 하늘을 봤을 때 저절로 흘러나온 시요, 큰 위로와 치유를 받은 느낌이 생생합니다. 이 또한 성령의 선물이라 믿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 대한 답도 성령임을 깨닫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주님을 담대히 증언할 수 있는 용기도 성령의 선물입니다. 주님은 곤경에 직면했을 때 할 말을 알려 주시는 분도 성령이라 하십니다. 다음 말씀이 우리에게 큰 경각심을 줍니다.
“사람의 아들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모두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말을 하는 자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누구입니까? 악의적, 고의적 무지로 인해 진리의 주님, 생명의 주님, 성령의 주님으로부터 자기를 차단하는 자입니다. 자살이 대죄인 이유가 바로 이러합니다. 참으로 무지의 절정이, 스스로 자초한 지옥의 심판이 바로 성령을 거스르는 성령모독의 대죄입니다. 무지의 죄, 무죄의 악, 무지의 병의 절정이 바로 성령모독입니다. 진리와 사랑, 생명 자체인 주님을 거부하고 스스로 자기감옥에 갇혀 지옥을 사는, 회개가 전무한 이들이 바로 성령을 모독하는 자들입니다. 하느님의 특별 회개 은총을 필요로 하는 자들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에 대한 답을 바오로 사도가 로마에서 쓴 옥중서간인 에페소서에서 줍니다. 어제의 참 아름답고 깊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베풀어진 하느님의 은총을 노래한 <찬미가>에 이어 오늘 역시 아름답고 깊은 <신자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모두가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어.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신비, 나의 신비를 깨달아 알게 해 달라는, 그리하여 무지의 어둠과 속박에서 해방해 달라는 간절한 청원입니다. 마지막으로 교회가 답임을 일깨웁니다. 무지에 대한 답은 성령이요 성령으로 충만한 교회이자 이 거룩한 미사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은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아래 굴복시키고, 만물 위에 계신 그분을 교회에 머리로 주셨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모든 면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로 충만해 있습니다.”(에페1,22-23)
오늘은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입니다. 사도 요한의 제자이자 스미르나의 주교 성 뽈리카르포의 스승인 이냐시오에 대해 거의 알려진 것은 없습니다. 다만 그가 로마에 압송되어, 107년 향년 73/75세로 맹수형으로 순교하기 전까지 남긴 일곱 개의 서간이 남아 있습니다. 가톨릭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도교부입니다. 성인의 다른 이름은 하느님을 모시고 다니는 자라는 뜻의 <테오포로스(Θεοφόρος)>입니다.
성 이냐시오를 비롯한 모든 성인들이 희망의 표징, 회개의 표징, 구원의 표징이 됩니다. 무엇보다 성인은 성령의 사람입니다. 성령의 은총이 있어 자발적 사랑의 순교요 다음 성인의 어록에서 성령의 사람임이 잘 드러납니다.
“믿음은 시작이요 사랑은 완성이다.”
“나는 하느님의 밀입니다. 나는 맹수의 이에 갈려서 그리스도의 깨끗한 빵이 될 것입니다.”
“이제 출산의 고통이 저에게 다가와 있습니다. 제가 생명을 얻는 것을 방해하지 마시고, 또 제가 죽음의 상태에 있기를 원하지도 마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신 곳에 가톨릭교회가 있듯이, 주교가 나타나는 곳에 공동체가 있어야 합니다.”
정말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야말로 교회의 사람, 성령의 사람이었음을 봅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교회의 사랑, 성령의 사람이 되어 <깨달음의 여정>에 충실하도록 좋은 도움을 줍니다.
“하느님 내 주시여,
온 땅에 당신 이름 어이 이리 묘하신고.”(시편8,10).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