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교회는 기쁨과 희망의 성인으로 불리는 성 필립보 네리 사제의 생애를 기립니다. 1515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태어난 성인은 몬테카시노 수도원을 방문하고 베네딕도회 수사들의 가난하고 단순한 삶에 감명받아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서른여섯 늦은 나이에 사제품을 받은 성인은 로마에서 젊은이들을 위한 사목 활동에 투신하며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돌보는 오라토리오라는 공동체를 창설했습니다. 성인은 회원들에게 엄격한 생활 규율과 청빈을 요구하지 않았고, 회원들도 별도의 수도서원을 하지 않았습니다. 성인은 동료들과 함께 지금 있는 자리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기쁘게 살아갈 힘을 신자들에게 나누어 주려고 노력했습니다. 특별히 노래와 연극으로 복음을 선포했는데 나중에 이것이 오라토리오라는 음악 장르로 발전했다고 합니다.
엄격한 금욕적 수행으로만 인식되었던 수도생활의 본질적인 의미가 기쁨을 향한 응답이라는 사실을 알려준 성인의 삶을 기리는 오늘,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심으신 기쁨의 씨앗을 찾아보아야겠습니다. 한편 오늘 복음에서는 포기라는 영적 가치가 구원의 조건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복음 때문에 형제나 자매, 어머니,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백배의 상급을 받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이 포기의 가치는 마르코 복음 말고도 루카 복음과 마태오 복음에서 매우 강조됩니다. “여러분 가운데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모두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루카 14,33). “완전해지려면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시오. 그러면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터이니, 그렇게 하고 와서 나를 따르시오.” (마태 19,21). 특별히 마태오 복음 19장 21절의 말씀은 수도자들에게 복음 중의 복음으로 받아들여지는데, 이 말씀이 바로 그리스도교 첫 수도자인 성 안토니우스가 회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포기는 수도영성의 핵심을 차지합니다. 하지만 포기를 강조하다 보니 생겨나는 병폐도 없지 않습니다. 포기란 말이 은연중에 보상심리를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위해, 교회를 위해, 공동체를 위해 포기하고 버린 게 얼마인데 이런 것 정도야 하면서 스스로 타협하고 허용하다 보니 수도생활이 세련되고 안락한 독신생활로 전락해 버립니다. 수도생활에서 얻을 보상은 다른 게 없습니다. 우리가 지키고 사는 서원 그 자체,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공동체 삶 그 자체가 수도생활의 보상일 뿐입니다. 일상에서 바치는 순명의 노고와 공동체와 형제들을 위한 헌신을 통해 우리가 진정한 기쁨을 찾을 수 있도록 주님께 은총을 청하며 오늘 하루 우리에게 주어진 수도 여정을 겸손한 마음으로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