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세 차례나 자신의 수난과 부활을 제자들에게 미리 알렸습니다. 첫째 예고는 필립보의 카이사리아 근처에서 베드로가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한 직후에 있었습니다. 이때 베드로가 이를 완강히 거부하자, 예수는 단호하게 반응합니다. “물러가라, 사탄아!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들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르 8,33). 예수의 수난과 부활이 두 번째로 예고되었을 때(마르 9,30-32)도 제자들은 그들 가운데 누가 우월하냐는 것으로 다투고 있었습니다(마르 9,33-35). 이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남깁니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모든 이 가운데 말째가 되어 모든 이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마르 9,35)
오늘 우리가 복음에서 들은 셋째 예고에서도 마찬가지로 제자들은 그때가 언제 올지 도통 관심이 없습니다. 다만 장차 자신들에게 돌아올 영광과 상급에만 신경을 씁니다. 제베대오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은 하나는 오른편에 하나는 왼편에 앉혀달라고 간청하기까지 합니다. 이 답답한 제자들을 향해 예수는 이런 말씀을 합니다. “내 오른편이나 왼편에 앉는 것은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정해진 사람에게 돌아갈 것입니다.”(10,40) 아마도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은 예수가 무력을 사용하여 이스라엘을 로마의 억압으로부터 해방시킬 군사적인 구원자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도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예수님의 때를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아둔한 제자들은 스승의 때를 알아채지 못했고 오직 한 여인만이 예수의 때를 감지했습니다. 마르코 복음 14장 3절에서 9절까지의 일화에 등장하는, 베다니아의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발라드린 바로 그 여인입니다. 오직 이 여인만이 예수의 수난과 부활 예고를 사실로 믿었습니다. 임박한 예수님의 죽음을 알고 있었기에 이 여인은 자신이 가진 것 가운데 가장 귀한 것을 예수님께 바쳤습니다. 이 여인은 빈 무덤이 발견되기 전에 이미 예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부활을 믿었습니다. 스승의 운명을 알고 있다는 것은 참된 제자의 표지가 됩니다. 이 참된 제자는 열두 사도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전승에서 아무런 이름도 전해 주지 않는 한 무명의 여인인 것입니다. 가부장적인 문화에서 천대받던 한 여인이 참된 제자의 반열에 들게 됩니다.
그리스도교의 신앙은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되는 역설의 진리이자 반전의 가르침입니다. 나누면 줄어들지 않고 불어납니다. 포기하면 잃어버리지 않고 다시 무언가를 얻습니다. 섬기면 비천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높아집니다. 이렇게 기존 관념을 뒤집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꼴찌라고 비천하다고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모든 이들에게 복음이 됩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절대자인 신과 인간 사이에 축복과 은총이 오고 가는 기복 신앙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마셨던 고뇌의 잔을 마시고 예수님이 받았던 피의 세례에 동참하는 실천 신앙입니다. 일상에서 주님께 대한 믿음을 고백하고 실천하는 우리의 자세를 되돌아보며 오늘 하루 주어진 신앙의 여정을 시작하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