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쌍날칼과 같아 골수를 가르고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봅니다. 오늘 복음 말씀을 읽고 있으면 마치 거울에 내 속을 비추는 것만 같습니다. “남을 판단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 남 흉보는 일을 큰 낙으로 여기는 저 같은 사람은 이 주님의 말씀 앞에 한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뒷담화는 마약과 같아 끊을 수가 없습니다. 남을 씹으면 씹을수록 그 맛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뒷담화는 술자리에서 할 때 더 맛이 좋은데, 그중에 가장 좋은 안줏거리는 장상입니다. 이제는 제가 안줏거리가 되어버렸습니다. 이게 다 제가 지난 세월 지어놓은 업보라고 생각합니다.
언제부터인가 남을 흉보는 일을 뒷담화라는 용어로 표현합니다. 뒤에서 몰래 하는 이야기, 정도의 말로 들리지만, 실은 뒷다마를 깐다는 무시무시한 비속어입니다. 예전에 우리가 자주 쓰던 전깃다마, 다마네기에서 알 수 있듯이 다마는 일본말로 구슬, 공, 알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뒷다마를 깐다는 말은 뒤통수를 쪼개버린다는 뜻입니다. 이 말이 순화되어서 뒷담화로 변한 것 같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뒷담화만 하지 않아도 성인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황님은 뒷담화를 말이라는 폭탄을 던져서 사람을 죽이는 행위에 비유했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의 평판을 깎아내리는 뒷담화는 공동체를 파괴하는 살인 행위라고 경계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며 제가 지금껏 판단하고 단죄하며 마음속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던가 반성해 봅니다. 아마도 시골 면 하나를 채울 정도의 사람들을 죽이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아직도 남을 비판하고 판단하면서 이 연쇄 살인 행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똥개가 똥을 끊지 인간이 어찌 뒷담화를 끊겠습니까.
우리가 뒷담화에 빠지는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뒷담화는 일종의 배설 행위이기 때문에 거기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됩니다. 카타르시스는 마음속에서 억압되어 있던, 슬픔, 불안, 분노를 외부로 표출하여 해소하며 느끼는 감정의 정화 작용을 말합니다. 타인에게 가지고 있던 감정의 쓰레기를 배설하고 느끼는 개운함이나 후련함이 우리를 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게 합니다. 이 형제를 헐뜯고 저 형제를 흉보다 보면 어느새 우리 모두 진흙탕 속에 들어가 서로의 얼굴에 흙칠을 하고 있게 됩니다. 이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감정을 배출하는 새로운 방식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문제를 기도로써 해결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영혼의 심연에 자리한 하느님과 대화하며 내면의 상처와 결핍을 치유하고 기쁨을 찾는 길이 해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웃과 형제를 판단하기에 앞서 우선 생각을 멈추고 잠시 내면을 바라보며 그분들을 위해 기도해 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오늘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