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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2주간 화요일(2026년 6월 23일)

길은 원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맨 처음에 길을 나선 이가 있고, 그 이가 남긴 실낱같은 자취를 따라 사람들이 걷고 걸어서 하나의 길이 생겨납니다. 길 하나를 만들기 위해 무수한 사람들이 그 길 위에 쓰러지고 자신들의 흰 뼈를 길 위에 이정표로 세워둡니다. 길을 시작한 사람은 많으나 길의 끝에 닿은 사람은 적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생명으로 이끄는 문이 얼마나 좁고 그 길이 얼마나 비좁은지 토로하고,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음을 한탄합니다. 사실 문이 좁고 길이 비좁아서 찾는 사람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사람들이 찾지 않기에 문이 좁고 길이 비좁아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길을 잃은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길이 좁고 숨어 있어 찾지를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앞에 놓인 길이 너무 많기에 바른 길을 택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사람들이 몰려가는 곳이 길이 되고 말았습니다. 남들이 가니 분별없이 그 길을 따라갑니다. 남보다 앞서가자고 달려가다 보니 고생길이 되고 맙니다. 잠깐 흘러가는 유행에 휩쓸려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가야 할 길을 놓치고 맙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입니다. 이 길은 십자가가 서 있는 골고타 언덕을 향해 나 있습니다. 사람들이 선뜻 이 길을 나서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우리는 희생과 죽음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기쁨과 부활을 찾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길은 골고타 언덕이 아니라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끝이 납니다. 생명으로 이끄는 이 길이 사라지지 않도록 뚜렷한 발자국 하나 남기는 것, 이것이 신앙인들, 특별히 우리 수도자들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내딛는 발자국 하나가 어떤 의미인지 서산 대사 시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 함부로 어지러이 걷지 마라 / 오늘 내가 남긴 발자취는 / 마침내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라.”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거두이신 백범 김구 선생께서 이 시를 좌우명으로 삼아 평생 마음에 새기고 살았다고 합니다. 우리가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다른 이들에게 이정표가 된다는 사실 명심하시고 매 순간 깨어 있는 마음으로 흔들림 없이 각자에게 주어진 사랑과 봉사의 요청에 충실하게 응답하며 신앙의 여정을 이어나가야겠습니다. 길이요 생명이신 주님께서 당신을 따라나선 우리 발걸음을 축복해 주시길 바랍니다. 오늘 하루도 지치지 않고 각자에게 주어진 신앙의 여정을 걸어갈 힘을 북돋아 주시기를 주님께 청하며 미사를 계속 봉헌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