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 예수님, 반갑습니다. 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저는 어제 새로 요셉 수도원으로 입주한 고진석 이사악 수사라고 합니다. 저는 원래 왜관 수도원 소속인데, 요셉 수도원에서 일 잘하고 착실한 머슴이 필요하다고 해서 이렇게 오게 되었습니다. 새경을 얼마나 주실는지 모르겠습니다. 당가 수사님 통장에 돈이 좀 있습니까? 별일이 없다면 앞으로 6년 동안 이곳에서 여러분과 함께 주님을 섬기며 살아갈 것입니다.
잠시 제 소개를 드리겠습니다. 외모에서 짐작하시겠지만 저는 해외 출신입니다. 까무잡잡하지요. 바다 건너 제주에서 왔습니다. 2000년에 왜관 수도원에 입회를 했는데, 여기 사는 강 피델리스 수사님이 제 입회 동기이자 수련 동기입니다. 왜관에서 3년을 함께 살았습니다. 2003년에 첫 서원을 하고 로마로 유학을 갔는데, 성 안셀모 수도원에서 최 파코미오 수사님과 함께 2년을 함께 살았습니다. 그리고 2007년에 종신 서원을 하고 같은 해 사제 수품을 받았고 수도공동체에서 여러 가지 소임을 했는데 그중에 특기할 만한 일 중에 하나는 청원장으로서 우리 당가 수사님, 문 도미니코 수사님을 제가 일 년 동안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분도라는 수도원 잡지를 창간하고 12년 동안 펴냈고, 선교 총무라는 직책도 맡아서 후원회를 조직하고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의 가난한 수도공동체를 지원하는 일을 했습니다. 2022년, 마흔여덟이라는 늦은 나이에 다시 로마로 유학을 다녀왔는데, 이 엘리야 수사님과 함께 안셀모 수도원에서 3년을 같이 살았습니다. 작년에 영성신학 석사 학위를 받고 귀국해서 12월부터 부산 오륜대 호숫가에 있는 성 분도 명상의 집 책임을 맡다가 갑작스러운 부르심을 받고 이곳 불암산 자락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지난 4월 30일 요셉 수도원의 원장으로 선출되었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순간 참으로 묘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14년 요셉 수도원이 왜관 수도원에서 분가하여 원장좌 자치 수도원으로 승격되던 날 제가 이 자리에 공증인으로 있었고 자치 수도원 설립 교령에 서명을 했습니다. 그리고 어제 파코미오 수사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인장과 수도원 문장도 제가 만들어 주었습니다. 원장 선출 통보를 받고 승낙을 할까 말까 고민을 했습니다. 부산에 간 지 넉 달째로 접어들어 적응도 되었고 사람들도 많이 사귀었습니다. 더군다나 지난 2월부터 시작한 수리 공사가 거의 마무리 단계라 이제 판만 펼치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셉 수도원 수도 형제의 2/3가 저를 선택했다는 말을 듣고 마음을 정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 생활에서 모든 문제의 답은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벗들을 위해 당신 목숨을 바치셨듯이, 저도 저를 사랑하는 사람들 곁으로 가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이미 장상을 여럿 겪어 보았지만, 저는 이 장상 직무가 태어나서 처음 맡아 봅니다. 많이 서툴고 많이 어설픕니다. 저는 신참이고 여러분은 고참이니 여러분이 저를 이끌어 주셔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저에게 어떤 기대를 가지고 계신지는 모르겠지만 함께 기도하고 함께 머리를 맞대어 서로의 의견을 경청하며 하느님의 뜻을 바르게 분별하고 실천하는 공동체가 되었으면 합니다. 파코미오 수사님께서 초대 원장으로 취임하면서 앞으로 요셉 수도원이 산중 옹달샘같이 소박하고 맑은 공동체가 되길 원한다고 수도원의 미래를 구상했습니다. 저는 여기에 덧붙여 새벽에 토끼가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가는 곳이 아니라 와서 운동도 하고 소시지 안주에 맥주도 한잔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우리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에게는 다른 수도회의 회원들과는 달리 모나쿠스 즉, 수도승이라는 명칭이 붙습니다. 수도승은 홀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뜻인데, 이보다 더 깊은 의미는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하느님과 하나가 되고 형제와 하나가 되고 이웃과 하나가 되고 더 나아가서는 우리가 버리고 온 세상과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수도승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무엇보다 일치의 사명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공동체의 일치는 카리스마 있는 장상이나 체계적으로 조직된 제도를 통해 실현되지 않습니다. 공동체 일치의 매개는 거룩함, 곧 성덕입니다. 각자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성숙된 인격으로 거듭나지 않고서는 공동체의 평화는 결코 이룩되지 않습니다.
이제 세상은 우리를 한참 앞서 갑니다. 예전에는 수도원에서 하는 일들이 세상을 월등히 앞서 갔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런데 우리 베네딕도 회원들이 아직도 세상보다 잘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공동체 생활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동체가 해체되고 개인주의가 팽배해지는 이 시대에 우리가 세상에 기여할 바는 함께 모여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기쁘고 아름다운지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좀 더 가면 말이 삼천포로 빠질 것 같습니다. 이제 간단히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첫째, 옹달샘을 정비하자. 이제 토끼들이 와서 운동도 하고 소시지 안주에 맥주도 마시게 해보자. 둘째, 성덕을 쌓자. 하느님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우리도 완전한 사람이 되도록 수도 생활에 전념하자. 셋째, 친교와 우애의 공동체를 만들자. 주님 부활 후 사도들이 예루살렘에서 살던 그대로 모든 것을 함께 나누며 한마음 한 정신이 되어 살아가자.
아무튼 여러분이 선택했으니 이제 저는 여러분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주인이 게으르면 머슴도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주인 의식을 가지고 제대로 저를 부려먹기 바랍니다. 우리 공동체가 주님의 도구가 되어 이 땅에 하느님 나라가 세워지는 데 미약하나마 힘을 보탤 수 있도록 우리의 주보이신 성 요셉과 우리의 사부 성 베네딕도께 전구를 청하며 이만 강론을 마치겠습니다.
성 요셉,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성 베네딕도,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