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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 성 요셉 수도원 성당 봉헌 축일(2026년 5월 30일)

“절이 생기기 전에 수행이 있었다.” 무소유라는 수필로 우리에게 친숙한 법정 스님의 말씀입니다. 제도적인 종교에 앞서 종교적 실천이 먼저 존재했다는 뜻인데, 이 말을 우리식으로 풀어 보면 성전이 생기기 전에 신앙이 있었다가 됩니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밀라노 칙령을 반포하기 전까지 그리스도인들은 번듯한 건물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초세기 그리스도인들은 주로 가정집에 모여 비밀리에 성찬례를 거행했고 순교자들을 기리는 축일에는 카타콤바에 모여 기도했습니다. 지하에 숨어 있던 교회가 지상으로 올라오면서 신자들이 늘어났고 규모 있는 집회 장소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로마 시내에 성당들이 지어지기 시작했고 324년에 세워진 라테라노 대성전은 전 세계 모든 성당의 어머니로 대접받습니다.

그리스도교가 기성 종교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종교 의식을 거행하기 위한 건축 공간을 갖추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하지만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 예배와 친교의 장으로 활용되던 가정이 더 이상 교회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게 되는 안타까운 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더욱 큰 문제는 성전이라는 개념이 하느님 현존 방식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고방식은 사람들 가운데 거처하시는 하느님을 특정한 공간에 가두어 버리게 만듭니다. 하느님은 이제 성당에서만 만날 수 있고 감실 안에만 계시는 분이 되고 맙니다. 이런 그릇된 인식은 교회 안의 삶과 교회 밖의 삶이 분리되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교회의 존재란 화려하고 육중한 건물로 드러나지 않고 주님을 향한 열렬한 믿음과 교우들 사이에 나누어지는 형제적 우애 그리고 사회적 약자와의 연대를 통하여 드러나야 합니다.

이를테면 성전은 껍데기요 신앙은 알맹이라는 말입니다. 본질은 신앙입니다. 복음 성경에서 예수님은 시종일관 예루살렘 성전에 대하여 매우 비판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방금 우리가 들은 복음에서도 예수님은 성전에서 희생제물을 파는 장사꾼들과 환전상들을 쫓아내며 무섭게 질타합니다.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대로 성전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입니다. 기도로써 온전히 표현되는 우리의 신앙이 하느님께 드리는 진정한 예배가 됩니다. 우리 일상에서 사랑이 실천되는 그곳에 하느님이 계십니다. 화려한 성전과 장엄한 전례가 부실한 신앙을 포장해 주는 수단이 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예수님을 팔아먹고 살아가는 장사치에 불과합니다.

물론 성전으로 상징되는 제도적인 교회가 무용지물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가시적인 측면의 교회와 영적인 측면의 교회, 둘 다 중요합니다. 하지만 우선 알맹이가 알차야 되고 그다음에 껍데기를 아름답게 꾸며야 합니다. 그러면 오늘 봉헌 축일을 맞이하는 우리 수도공동체의 성전은 어떤 모습으로 세상에 드러나야 명실상부한 하느님의 집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성모님의 호칭 중에 죄인들의 피난처라는 호칭을 좋아합니다. 교회 역시 자애로운 어머니이기 때문에 죄인들의 피난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거룩하고 흠 없는 이들만이 출입하는 특별한 곳이 아닙니다. 주님의 자비가 필요한 모든 이에게 열려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이 성당 역시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세파에 지친 심신을 쉬게 하며 영적인 갈증을 채우고 생기를 되찾을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수도자들이 끊임없는 기도로써 생명수의 샘에서 물을 퍼올려 이 성당을 찾는 이들에게 제공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봉쇄 안에 살면서도 세상과 교회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성직자들이 교회의 머리라면 수도자들은 교회의 심장입니다. 머리는 몸을 통제하고 심장은 몸을 지탱합니다. 심장이 멈추면 몸에 피가 돌지 않습니다. 우리 수도자들이 기도에 소홀하면 그리스도의 지체에 피가 제대로 공급되지 못합니다. 이 성당은 교회에 피를 공급하는 혈액원입니다. 혈액원의 역할은 깨끗한 피를 많이 확보하여 위급한 사람들에게 제때에 공급하는 것입니다. 이는 정갈한 몸과 정결한 마음을 유지하는 수도 생활의 목표와 부합합니다. 사실 우리의 육신은 성령의 궁전이며 하느님의 거처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수도 생활에 충실할 때 이 성전이 명실상부한 하느님의 집이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 수도원 성당이 지어진 지 올해로 20년이 됩니다. 이제 청소년기를 지나 성년으로 들어섰다고 볼 수 있는데, 그만큼 우리 수도공동체도 더욱 성숙한 신앙 공동체로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이 성당이 지어지기까지 수고한 수도 형제들의 노고를 기억합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물적으로 아낌없는 도움을 주신 많은 은인들도 기억합니다. 아울러 이 성전에 찾아와 우리와 함께 기도하고 찬양을 드리는 형제자매들도 기억합니다. 앞으로도 이 성당이 기도의 집이자 하느님의 거처로 남을 수 있도록 여러분들의 많은 기도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