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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9주간 금요일(2026년 6월 5일)

오늘은 매월 첫 금요일, 자비 지극한 예수 성심을 기리며 하루를 보냅니다. 또한 우리는 수도공동체를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는 은인들을 기억합니다. 우리는 베네딕도회라 노동의 영성을 강조하며 자급자족의 삶을 지향한다고 자랑스럽게 말하지만, 실제적으로 신자분들의 도움 없이는 우리 살림을 꾸려나갈 수 없습니다. 성당, 농장, 주방, 빨래방 등 원내 어느 곳 하나 은인들의 은덕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힘으로 사는 게 아니라, 많은 은인들을 통하여 내려주시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명심해야겠습니다. 오늘 미사 중에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 은인들의 가정에 은총과 평화로써 보답하여 주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아울러 우리들도 수도생활에 충실하여 은인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수도서원에 충실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방금 들은 복음 말씀을 짧게 나누겠습니다. 신약 성경에는 예수님을 지칭하는 약 200개의 단어가 등장합니다. 대표적인 것만 꼽아 보아도, 그리스도, 메시아, 사람의 아들, 그리고 오늘 복음에 나오는 다윗의 자손이 있습니다. 이 호칭들은 각기 다른 문화와 종교적 배경을 가진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 파생된 것들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다윗의 자손이라는 호칭이 부적절하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나오는데, 이는 해외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의 견해가 반영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부활 이전의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르는 것은 합당하지만 부활 이후 성부께로 가신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이 아닌 하느님의 아들로 불려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다양한 호칭들은 그만큼 많은 이들이 다양한 염원을 예수님께 두며 구원을 갈망했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한편 이런 호칭들 속에 예수님의 진면모가 가려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의 신성을 맹목적으로 숭배하기에 앞서, 예수님의 인성, 역사상의 인물인 예수에 더 가까이 다가갈 필요가 있습니다. 현학적 신학 언어와 현란한 종교 언어를 벗겨내면 예수님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까요? 그 연약하고 초라한 인간 예수의 모습을 보고도 우리는 그분을 나의 주님이며 나의 구원자라고 고백할 수 있을까요?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고 가르치면서 정작 자신은 장가도 못 가고 자기 머리 누일 곳조차 마련하지 못한 불쌍한 노총각 예수님,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만 찾아다니다가 낳아주신 어머니 가슴에는 대못을 박고 죽은 불효자 예수님. 오늘 하루를 보내며 예수님을 부르는 자신만의 호칭을 하나씩 찾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