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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2026년 6월 7일)

가톨릭교회의 성체 성혈에 대한 교의와 신심은 여타 그리스도교 공동체보다 더 강합니다. 우리는 성체성사에서 빵과 포도주의 형상은 그대로 남아 있으나 그 실체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된다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래서 성체 성혈에서 예수님의 현존을 인식하며, 성체 조배, 성체 현시, 성체 거동 같은 성체 공경 예식을 거행합니다. 그런데 동방교회에서는 가톨릭교회의 성체 공경을 매우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동방교회도 실체변화 교의를 믿기 때문에 빵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변한다고 믿기는 하지만 전례 밖에서 경배할 대상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성찬례를 거행하는 자리에서 성체와 성혈을 모두 모시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개신교에서는 성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성찬례를 거행하는 일을 소홀히 합니다. 아무튼 성체 성혈에 대한 공경과 신심은 가톨릭교회를 특징짓는 전통이라고 하겠습니다.

기적이 믿음을 불러일으키는지, 믿음이 기적을 불러일으키는지 모르겠지만, 가톨릭교회 안에서는 축성된 제병이 인간의 살로 변하고 축성된 포도주가 인간의 피로 변하는 기적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8세기경 이탈리아 란치아노라는 곳에서 처음 일어난 성체 성혈 기적은 1263년 이탈리아 볼세나라는 곳에서 다시 일어났습니다. 1996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도 일어났는데, 당시 이 기적을 확인한 교구장이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 추기경, 바로 프란치스코 교황님이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란치아노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성체 표본을 과학적으로 검사한 결과 인간의 심장 근육 조직이며, 동일 인물이라는 소견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제가 집전하는 미사에서 이런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최후의 만찬을 통해 성체성사를 제정하신 예수님도 이런 기적을 의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체성사를 통하여 우리가 당신의 십자가 희생을 기억하고 수난에 동참하기를 바라십니다. 베트남 구엔 반 투안 주교님의 옥중 체험이 성체성사의 올바른 효과를 우리에게 분명히 전해 줍니다. 13년 동안 옥살이를 하는 동안 주교님은 위장약을 가장해서 반입한 포도주로 미사를 드렸습니다. 날마다 손바닥에 세 방울의 포도주와 한 방울의 물을 올려놓고 드렸던 미사는 비참과 절망으로 얼룩진 현실을 거룩함과 희망으로 바꾸어 준 힘이 되었습니다. 2000년 교황청 사순피정 강의에서 주교님은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미사를 봉헌할 때마다 예수님과 함께 손을 펼쳐 십자가에 저를 못 박을 수 있는 기회를 가졌고 그분과 함께 가장 쓴 잔을 마셨습니다. 제 생애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사였습니다.”

한국전쟁 중 희생당한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의 순교록에도 비슷한 체험이 등장합니다. 덕원 수도원과 원산 수녀원에서 체포된 독일인 선교사들은 평양 교화소를 거쳐 압록강 상류 오지인 옥사덕이라는 곳에 전쟁이 끝날 때까지 수용되었습니다. 감시원들의 학대와 횡포는 극에 달했고 수도자들은 영양실조와 질병으로 하나둘씩 목숨을 잃어갔습니다. 성체성사를 지키기 위하여 그들은 눈물겨운 투쟁을 벌어야 했습니다. 제병용 밀가루를 얻기 위해 배급용 보리에 섞인 밀을 골라 밭에 뿌렸습니다. 그러나 수용소 소장이 이를 알아챘고 잘 자라던 밀밭은 갈아엎어졌습니다. 수도자들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 감시원들의 눈을 피해 옥수수 고랑 사이에 몰래 밀을 심었고, 작은 주발 하나 분량의 밀가루를 얻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죽음의 나락에 던져진 그들의 영혼을 지탱해 준 영적 양식이 되었습니다. 새끼손톱만 한 크기의 제병과 포도주 한두 방울로 미사를 드리며 그들은 모진 시련의 시기를 견디어 냈습니다. 주님은 기묘한 방식으로 그 가혹하고 살벌한 수용소 안으로 들어오시어 그들과 고난을 함께 했습니다.

이런 사례들은 성체 성혈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다른 각도에서 이해하게 해줍니다. 현대 신학자들은 실체변화보다 의미변화 혹은 목적변화라는 용어를 더 선호합니다. 한 사물의 의미와 목적은 그 재료를 손상하지 않고도 바뀝니다. 예를 들어 낡은 집을 부수어 거기에서 나오는 건축 자재로 다리를 만들었다 치면, 이전에는 거주 공간이라는 의미와 목적을 가지고 집이라는 형상을 이루던 건축 자재가 아무런 질료적 손상 없이 다리라는 새로운 본성과 본질로 변화됩니다. 성체성사를 통하여 지상의 음식들은 형상과 질료를 그대로 유지한 채 예수님의 현존으로 그 의미가 바뀝니다. 육체적 생명을 보전하는 데 쓰이는 지상 음식들이 우리 안에 있는 하느님의 생명을 기르는 목적에 쓰입니다. 성체성사를 통하여 우리는 먹고 마시는 사소한 일상 행위가 거룩한 존재가 깃드는 신비로 바뀌는 경이로움을 체험합니다. 그리고 이 경이로운 체험이 우리 삶을 하느님의 신비 속으로 이끌어 갑니다.

주님은 스스로를 생명을 주는 빵이라고 정의합니다. 누군가에게 먹히고 힘이 되어주는 존재. 이것이 오늘도 성체성사를 통해 우리에게 드러내시는 주님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빵과 포도주라는 상징을 통하여 예수님의 살과 피를 받아 모시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살이 기억하고 있는 수난과 부활의 체험들 그리고 예수님의 피에 담겨 있는 사랑의 열정을 우리 몸에 체화시키려고 우리는 성체와 성혈을 영합니다. “먹는 것이 곧 나다”라는 유명한 표어가 있습니다. 음식이 그것을 먹는 사람의 정체를 드러낸다는 뜻입니다. 마찬가지로 성체성사는 우리를 그리스도로 변화시켜 줍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사람들이기에 제2의 그리스도로 살아가야 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명심하시고 새로운 한 주간을 시작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