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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2026년 6월 24일)

살다 보면 사람이 걸림돌이 되고 사람이 장벽이 되는 경우를 많이 겪게 됩니다.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고 엉뚱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 말귀가 어둡고 고집이 세어 대화와 소통이 불가능한 사람들. 혈기가 왕성할 때는 그런 사람을 볼 때마다 속에서 천불이 일었지만, 이제는 딱해 보이고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한 번 주어진 인생, 물 흐르듯 바람 불 듯이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살지 못할까. 참으로 딱한 인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반면에 문이 되고 다리가 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나서고 물러날 때를 알고 오랜 세월 터득한 지혜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 줍니다. 시대의 징표를 읽을 줄 알기 때문에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주저함 없이 미래를 향해 나아갑니다.

오늘 교회는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 요한 세례자의 탄생을 기념합니다. 요한 세례자는 메시아의 도래를 준비하는 자신의 소명을 완수하고 끝내 불꽃같이 자신의 인생을 태우고 사라졌습니다. 요한 세례자는 신약 시대를 여는 문이 되었고 하느님 나라로 이어진 다리가 되었습니다. 자신보다는 뒤에 오실 분을 우선시하는 미래지향적인 사고, 그리고 자신의 역할이 신발 끈 풀어주는 일보다 못하다는 솔직한 자기인식, 이것이 우리가 요한 세례자에게 배워야 할 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요한 세례자는 우리 수도자들의 롤 모델입니다. 초세기 그리스도교 세계 전역에서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던 수도생활의 모습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었던 삶의 방식과는 다릅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나라를 위한 포기의 여정을 강조하셨지만, 공생활에 들어가기 전 아주 짧은 기간 동안 말고는 금욕적인 삶의 모습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먹보요 술꾼이라는 예수님의 별호에서 보이듯이 예수님은 은둔과 금욕이 아니라 친교와 포용의 삶을 사셨습니다. 반면에 낙타 가죽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두르고 광야에서 들꿀을 먹으며 살았던 요한 세례자의 삶의 방식은 초세기 수도자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특별히 낙타 가죽옷을 입는 유행이 수도자들 사이에 널리 퍼졌다고 합니다. 이 외투를 멜로떼라고 불렀는데, 심지어 낙타가 살지 않는 갈리아 지방, 그러니까 지금의 프랑스에 사는 수도자들도 낙타 가죽을 구해 외투를 만들어 입었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점은 요한 세례자의 카리스마 넘치는 외양이 아니라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하느님의 뜻이라면 목숨마저 아끼지 않는 불굴의 예언자적 정신입니다. 우리가 이 시대에 어떤 예언자적 징표를 보여주어야 할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지향하는 단순하고 절제된 삶은 과잉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표징이 될 것이고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친교와 우애의 공동체적인 삶 역시 개인주의와 무관심이 팽배한 이 시대에 자극을 줄 것입니다. 성 요한 세례자의 탄생 대축일을 지내는 오늘,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선구자로서의 우리의 소명을 되새겨보는 시간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