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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2주간 토요일(2026년 6월 27일)

예수님의 공생활은 선포와 치유 그리고 구마로 요약됩니다. 오늘 복음은 치유자로 활동하는 예수님의 활약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실로 다양한 병을 고치셨습니다. 시각장애, 청각 및 언어 장애, 한센병, 지체 장애 및 마비, 혈루증, 간질과 발작, 정신착란. 이뿐만 아니라 죽은 이도 살리셨고 심지어 체포되시던 밤에 베드로가 칼로 잘라버린 말코스라는 대사제의 종의 귀를 다시 붙여주기까지 하셨습니다. 요즘 같으면 혼자서 대형 종합 병원을 운영하고도 남을 치유 능력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의 신적 능력을 뽐내지 않고 항상 믿음이 기적을 일으켰다고 겸손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저는 솔직히 병을 낫게 하는 이 믿음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왜관에서 살 때 저랑 아주 친한 선배 수사님이 갑상선 기능 항진증이 와서 눈이 두꺼비처럼 튀어나왔습니다. 한 15년을 넘게 한방 양방 가리지 않고 용하다는 병원을 다 찾아다녀도 차도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돌팔이 야매 침쟁이에게 가서 한 뼘이 넘는 침도 맞고 또 침도 몸에다 꽂고 다녔습니다. 또 그걸 제게 자랑스럽게 보여주곤 하였습니다. 이건 치료가 아니라 완전 고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제가 수사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수사님은 믿음이 없는 것 같아요. 그렇게 병원엘 다니고 할 것 다 했지만 낫질 않잖아요. 예수님을 믿어야지 의사만 믿어서 되겠어요.” 그랬더니 그 수사님께서는 어이가 없는지 웃기만 했습니다.

그런 핀잔에도 불구하고 수사님께서는 한결같은 모습으로 수도생활에 충실하며 병원에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다녔습니다. 아직도 완쾌되지는 않았지만 불평도 하지 않고 낙담도 하지 않으며 주어진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일상을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선배 수사님의 이런 모습을 보고 저는 고통에서 해방되는 게 기적이 아니라 고통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 흔들리지 않고 생활하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이 기적을 이루어 내는 것이 믿음에 바탕을 둔 행동과 실천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믿음은 희망과 결합하여 의미 있는 행동을 유발합니다. 믿음의 반대말인 절망이 인간에게 어떤 행동을 유발하는지 생각해 보면 어떻게 믿음이 기적을 낳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무의식중에 하게 되는 몸짓 하나 말투 하나가 믿음을 드러내는 통로입니다. 이 작은 몸짓 하나 사소한 말투 하나가 희망을 부르고 기적을 이루어 냅니다.

치유와 관련하여 오늘 복음은 또 다른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줍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베드로의 장모도 열병에서 치유되었습니다. 그런데 마태오 복음사가는 베드로의 장모가 병석에서 일어나자마자 예수님의 시중을 들었다고 적어 놓았습니다. 이 대목을 저는 이렇게 해석합니다. 사지가 아무리 멀쩡해도 타인을 위한 선행이나 봉사를 자발적으로 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영적으로 환자입니다. 환자의 기준은 의사가 내어준 진단서가 아니라 사랑의 실천 여부에 달려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건강한 사람이란 자신의 육체의 상황에 상관없이 타인을 위하여 봉사할 준비가 되어 있고 사랑을 베풀 줄 아는 사람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에게 요구되는 갖가지 사랑의 요청에 믿음으로 자발적인 응답을 할 수 있도록, 그리하여 우리의 말과 행동이 믿음과 희망, 그리고 사랑의 표현이 될 수 있도록 성령께 우리의 삶을 의탁하며 오늘 하루 시작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