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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성 베네딕도 대축일(2026년 7월 11일)

사부 성 베네딕도 대축일 강론 찬미 예수님, 오늘 저희와 함께 사부 성 베네딕도 대축일을 경축하러 저희 수도원을 찾아오신 모든 분들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제가 지난 5월 3일에 이곳 남양주 성 요셉 수도원 원장으로 취임하고 이제 두 달이 지났습니다. 제가 어디를 가든지 일을 많이 벌이는 스타일이라 여기에 와서도 역시 일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사부 성 베네딕도 대축일을 기해 수도원 후원회를 조직해 보려고 두 달 전부터 부산을 떨었는데 경향각지에서 이렇게 많은 분들이 찾아와 주셔서 기분이 좋습니다. 후원회 이야기는 미사 말미에 따로 드리겠고, 지금 이 시간에는 오늘 우리가 경축하고 있는 사부 성 베네딕도 대축일의 의미를 함께 되새겨 보고자 합니다.

제가 올해로 수도 생활을 시작한 지 26년이 되었습니다.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보면 참으로 하느님의 은혜로 점철된 시간이었다고 나름 평가를 해봅니다. 수도원에 들어와서 공부도 많이 했고 외국도 많이 돌아다녔고 좋은 분들도 참 많이 만났습니다. 그리고 뜻밖에 한 수도공동체의 장상이 되는 영예까지 누리게 되었습니다. 더 바랄 것 없는 삶을 살고 있는데, 이제 한 가지 남은 소망이 있다면 앞으로 한눈팔지 않고 수도서원에 충실하게 살아가며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 수사로 늙어 가는 것입니다.

왜관에 있을 적에 아침기도 하러 성당 문을 열고 들어가면 항상 코러스 맨 윗줄을 채우고 있는 원로 수사님들이 보였습니다. 종이 치기 전에 들어가도 그 줄은 항상 채워져 있었습니다. 새벽을 기다리는 파수꾼들처럼 주님의 현존을 열망하는 원로 수도형제들의 모습은 무어라 표현할 길 없는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말없는 이 가르침을 어떤 의미로든 구체화시키고 싶었지만 제 사유가 짧은 탓에 쉽게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신문을 보다가 바로 이거다 하는 글을 발견했습니다. 고인이 된 어느 교수에게 헌정된 제자의 추도사였습니다.

“그는 올바르게 살아가는 법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저 살아가는 법을 말했습니다. 우리 모두 서로가 서로에게 부끄럽고, 실수하고, 상처 주며 살아왔다고. 그래도 지금까지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가야 하므로, 내일은 조금만 덜 부끄럽게 살자고만 말했습니다. 우리에게 부끄러움이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치사함이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비겁함이 있다는 것을 늘 인정했습니다. 자신의 비겁함과 허약함을 인정하고 또 타인의 허약함과 비겁함을 인정했습니다. 그래서 결국엔 우리가 같은 물방울 속에 존재하고 있음을, 내가 미워하고 부정하는 당신도 이 물방울 속에 같이 살며, 그토록 안간힘 쓰며 이 아슬아슬한 물방울의 장력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고 있음을, 가르쳤습니다.“ 아슬아슬한 물방울의 장력을 유지하는 일. 남과 더불어 살려는, 한 깨어 있는 지식인의 안간힘을 너무나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맺어지는 관계가 사실 이렇습니다. 손대면 톡하고 터질 것만 같은 그대들입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예민하고 까다롭습니다. 무심코 내뱉은 말 한마디가 상처로 꽂히고, 우연한 눈길 하나 몸짓 하나가 심각한 의미로 다가옵니다. 한편 욕을 하고 비판을 해대던 형제와 어느 날 술잔을 기울이기도 하고, 죽고 못 살던 형제들이 어느 순간부터 서로 못 본 체하기도 합니다. 어떻게 해야 좋은 관계가 유지되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습니다. 하느님과 관계가 좋아야 형제와도 관계가 좋다는 충고를 자주 듣지만, 상투스들은 왕따가 되기 십상이니 그것도 다 맞는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무튼 공동체 생활에 왕도란 없습니다.

더불어 사는 일이 이렇게 어렵건만 우리는 공동체를 통하여 하느님을 찾으려고 이곳에 모여 삽니다. 공동체 수도생활은 우리 사부 성 베네딕도께서 남겨 주신 위대한 영적 유산이며 또한 우리가 미래 세대에 물려주어야 할 소중한 전통이기도 합니다. 사부께서 공동체 수도생활을 주창한 까닭에는 야만족의 침입으로 야기된 로마 문명의 붕괴라는 역사적 배경이 깔려 있습니다. 베네딕도 성인은 파괴되고 와해된 개인의 삶과 공공질서의 틀을 다시 세워야 하는 문명사적 대전환의 시기를 살아가며 가치관과 신념을 공유하는 수도공동체라는 대안을 제시했고 그 결과 붕괴된 서유럽 문명을 다시 일으켰습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기후 위기와 인공지능의 도전 앞에 서 있는 우리 시대 역시 전환의 시기임을 우리는 직감합니다. 이러한 시대적 위기 앞에서 사부 성 베네딕도께서 물려주신 영적 유산의 가치는 더욱 빛을 발할 것입니다. 우리가 다음 세대로 물려주어야 하는 베네딕도 성인의 영적 유산은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볼 수 있습니다. 친교와 우애가 꽃피는 공동체 생활, 경청을 위한 침묵의 미덕, 모든 일을 하느님의 영광으로 돌리는 겸손한 자세, 모든 존재를 돋보이고 빛나게 하는 살림의 지혜, 말씀에서 샘솟는 전례 기도의 탁월한 미학, 육체노동의 신성함, 균형 잡힌 삶을 만들어 내는 중용의 지혜, 모든 시간과 장소를 하느님 체험의 장으로 만들어 내는 일상의 도道. 베네딕도 성인의 삶을 태우고 아울러 당대의 교회와 세상을 하느님을 향한 열정으로 불타게 했던 이 불씨들은 베네딕도회 수도공동체 안에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우리 사부께서 가르치신 인간의 길과 삶의 지혜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봅니다.

신의 시대가 가고 인간의 시대가 왔습니다. 전통의 시대가 가고 과학의 시대가 왔습니다. 공동체의 시대가 가고 개인의 시대가 왔습니다. 저희가 고수하는 영적 전통과 삶의 방식이 이 시대에 한참 뒤떨어져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인간 중심의 세계관과 디지털 과학 문명, 그리고 개인주의적 사고와 행동 방식은 곧 한계에 봉착할 것이고, 이를 극복하려는 새로운 시대적 요청과 도전이 요구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그리하여 베네딕도회 수도공동체에서 지난 1,500년 동안 소중히 간직해 온 이 불씨들이 머지않아 되살아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오늘 특별히 여러분들을 이 미사에 초대한 이유 역시 이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입니다. 베네딕도회는 원래 기도하고 일하는 전통이 있어서 자급자족의 삶을 영위합니다. 다시 말해, 남에게 손을 내밀지 않고 스스로 살림을 꾸려나간다는 말입니다. 이게 저희에게 굉장한 자부심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우리 힘만으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수사님들은 점점 연로해 가고 성소자는 갈수록 귀해지고. 그래서 제가 이곳에 오자마자 후원회를 조직하자고 제안을 드렸습니다. 수사님들께 이제는 자존심을 조금 내려놓아야 할 때라고 설득했습니다. 저희가 이곳 불암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아온 지가 내년이면 꼭 40년이 되는데, 아마도 이 성당에서 돈 이야기를 하는 것은 오늘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솔직히 앞으로 신자 여러분들의 도움 없이는 수도원 운영이 불가능합니다.
사실 이곳의 주인은 우리가 아닙니다. 남양주 성 요셉 수도원은 우리 하느님 아버지의 집이고 우리는 그저 그분의 관리인일 따름입니다. 우리 수사들은 새들입니다. 나무에 깃들어 살다가 언젠가는 떠나갑니다. 그러니 저희들이 여기에 오랫동안 머물며 살 수 있도록 이제 여러분들이 나무가 되고 숲을 이루어 이 터를 함께 지켜주시면 좋겠습니다. 나무가 나무에게 말합니다. “우리 더불어 숲이 되어 이곳을 지켜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