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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 승천 대축일(2026년 8월 15일)

예전에는 성모승천을 몽소승천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승천과 구별하기 위하여 이 말을 썼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시어 본래 당신의 자리로 돌아가셨고, 성모님은 스스로 하늘에 오르신 것이 아니라 들어 올림을 받은 것입니다. 하지만 승천이라는 말 때문에 성모님이 예수님처럼 하느님의 위격으로 들어갔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과 성모 이렇게 4위일체인 하느님을 믿는다고 합니다. 성모승천 교의를 잘못 이해하거나, 과도한 성모신심으로 말미암아 오류에 빠지는 경우들이 있는데, 이런 불미스러운 일은 우리나라에도 이미 생겼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아직까지 교회의 가르침에 순종하지 않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오류를 인정하지 않고 가짜 기적들을 마치 진실인 양 떠벌리고 다닙니다.

성모승천 교의는 동방교회나 다른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 교의가 그리스도교의 공식 신앙고백인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경에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성경이나, 초대교회의 문헌에도 언급되는 바가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도 성모님이 하늘로 올라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촌 언니 엘리사벳을 찾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성모님에 대한 공경심은 초대교회 때부터 생겨났는데, 성모승천 교리가 형성된 것은 4세기 말부터입니다. 6세기경 동방교회에서 생겨난 성모 안식 축일이 서방으로 전해져 성모 승천 대축일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성모승천 교의가 믿을 교리로 채택된 것은 최근 일입니다. 교황 비오 12세가 1950년 11월 1일에 회칙 “무니피첸티시무스 데우스Munificentissimus Deus”를 통하여 성모승천 교의를 믿을 교리로 반포했습니다. 그 후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다시 이를 확인했습니다. 1997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반포한 가톨릭교회 교리서에는 성모승천에 대하여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지극히 거룩한 동정 마리아는 지상 생활을 마치고 영혼과 육신이 천상 영광으로 들어 올려졌으며, 그곳에서 이미 당신 아드님의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여, 아드님의 신비체에 딸린 모든 지체들의 부활을 앞당겨 누렸다.”

신학자들은 항상 거창한 표현을 좋아하고 요란한 수식을 즐겨 합니다. 성모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원죄 없이 잉태되셨고, 평생 동정이셨으며, 하늘에 오르셨던 성모님. 교리서에 나오는 대로 성모님을 따라가자면 우리 같은 속물들은 감히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꾸며 놓은 성모님에 취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성모님을 사랑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만일 예수님 시대 당시의 나자렛을 방문했더라면 평범한 시골 아낙인 마리아를 만나고 깜짝 놀랄 것입니다. 보석으로 치장한 왕관에 푸른 망토를 걸치고 뽀얀 우윳빛 살결이 빛나는 여왕이 아니라, 까무잡잡한 피부에, 눈가에는 자글자글 주름이 지고, 몸뻬 바지에 뽀글이 파마를 한 아줌마가 거기에 서 있을 것입니다. 마리아의 모습은 그저 한평생 “예”라는 말만 하며 살았던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과 같습니다.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자발적으로 순종하고, 예수님의 구원 사업에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적극 동참하는 성모님의 모습은 복음서 곳곳에 나타납니다. 처녀의 몸으로 아비 없는 자식을 잉태하고서도 하느님의 뜻이라며 성모님은 “예”라고 대답했습니다. 마구간에서 해산을 하고 구유에 아기를 뉘어 놓고도 “예”라고 마음속으로 되뇌었던 성모님입니다. 그 후 30년을 나자렛에서 애면글면 가난한 시골 살림을 꾸려나가면서도 “예”, 장성한 아들이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겠다며 자신을 홀로 남겨두고 떠날 때도 “예”라는 말뿐이었습니다. 아들이 권세가들의 핍박과 위협을 받는다는 소식을 듣고도, 심지어 십자가 아래에서 아들의 죽음을 보면서도 성모님의 대답은 한결같이 “예”였습니다.

성모님은 예수님의 제자들과 함께 예수님 부활의 증인이 되었으며, 교회의 주춧돌을 놓았습니다. 하지만 돌아가시는 날까지 이방인들의 오해를 받고 박해받는 초대교회를 지켜보아야만 했습니다. 성모님은 일생을 “예”라는 대답으로 사시면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교회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이 영광스러운 지위는 성모님의 한결같은 충실성에 대한 하느님의 보답입니다. 이렇게 성모님은 늘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마음을 열어 놓았고, 충실하게 그분의 뜻에 순종했으며, 최선을 다할 준비가 되어있었습니다. 성모님은 자신이 처한 현실을 거부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하느님의 뜻을 찾았습니다.

성모님은 현세에 살면서도 다른 차원의 삶을 살았습니다. 어둡고 불투명한 상황에서도 성모님의 혼과 영은 하느님을 반겨 신명이 났습니다. 성모님은 자신에게 속한 모든 것을 하느님께서 다스리시도록 놓아두었기 때문에, 그분이 서 있는 자리마다 하느님 나라가 임했습니다. 하느님 나라에서는 이 세상의 가치가 빛을 잃습니다.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 통치자들, 부유한 자들이 판을 치지 못합니다. 그들로 인해 생존권을 박탈당한 비천한 이들, 굶주린 이들에게 하느님의 정의와 자비가 내립니다. 성모님께서 일생에 걸쳐 다가오는 모든 도전들을 향해 “예”라고 응수하며, 기다렸던 나라가 바로 하느님 나라입니다. 성모님의 황혼 무렵에 이 “예”라는 대답이 결실을 맺었습니다. 성모님은 마치 하늘나라의 시민처럼 고결하게 여생을 마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타락한 인간은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하느님의 모상을 회복하였고, 하와의 유혹으로 낙원에서 쫓겨난 인류는 마리아의 성실성으로 말미암아 다시 천국의 기쁨을 약속받았습니다.

육신을 벗고 하늘로 오르신 성모님은 이 지상에서 순례의 여정을 걷는 그리스도의 모든 지체들을 위하여 끊임없이 간구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발걸음이 온전히 하느님 나라로 향하도록, 우리의 마음이 오롯이 하느님의 뜻을 찾도록 성모님은 빌고 또 빌고 계십니다. 갈라진 우리 겨레가 하나 되고, 이 땅에 평화가 꽃피도록 성모님께 간구를 청합니다. 아울러 어머니께서 하늘로 오르신 이 좋은 날에, 짐승만도 못한 왜놈들의 통치를 받으며 슬픔의 골짜기에서 눈물 흘리던 우리 겨레를 건져내 주신 하느님 아버지께 찬미와 영광을 드립니다.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 아버지는 세세 영원히 찬미와 찬양을 받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