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은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며 매 순간 마주치는 아주 근본적인 질문 하나를 묵상하게 합니다. 바로 “나는 지금 ‘하느님의 일’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사람의 일’을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매일 저마다의 삶의 자리에서 바쁘게 살아갑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그리고 교회 안에서 봉사하며 스스로 하느님을 위해 열심히 살고 있다고 믿을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 말씀은 우리가 ‘하느님의 일’이라고 여겼던 많은 것들이 때로는 순전한 ‘사람의 일’에 불과할 수 있음을 경고하며, 신앙의 본질을 다시금 일깨워 줍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베드로는 전형적인 ‘사람의 일’에 충실한 인간상을 보여줍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향해 “스승님은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마태 16,16)라는 위대한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수난을 받고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셔야 한다는 ‘십자가의 길’을 밝히시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합니다. “주님, 도저히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마태 16,22) 베드로의 마음은 진심이었습니다. 스승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안타까움이었고, 스승의 안전을 바라는 인간적인 충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입에서 돌아온 대답은 엄했습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태 16,23) 베드로의 걱정은 인간적으로 볼 때 지극히 자연스럽고 따뜻한 정의 표현이었지만,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거대한 구원 계획, 곧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하느님의 일’을 가로막는 ‘사람의 일’에 불과했습니다. 사람의 일은 이처럼 인간적인 안위, 세속적인 성공, 그리고 나의 계산과 경험을 우선시할 때 시작됩니다. 반면 하느님의 일은 내 생각과 유익을 내려놓고, 이해할 수 없는 십자가의 길이라 할지라도 하느님의 뜻에 나를 내어맡기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느님의 일’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요한복음 6장에서 ‘하느님의 일’이 무엇인지 명확히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기적으로 빵을 배불리 먹은 군중이 물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요한 6,28) 이때 예수님의 대답은 간단명료했습니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요한 6,29) 우리는 흔히 하느님의 일을 거창한 업적이나 눈에 보이는 대단한 봉사 활동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행위에 앞서 ‘믿음’을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고, 그분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으며 나 자신을 통째로 내어맡기는 삶 자체가 바로 ‘하느님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 ‘하느님의 일’을 이루는 신앙인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명확한 실천 지침을 선포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려야 하는 합당한 예배입니다.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로마 12,1-2) 구약 시대의 제사는 죽은 동물의 피를 바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드려야 할 ‘합당한 예배’는 성당 안에서 바치는 미사나 기도로만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바오로 사도는 “여러분의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라”고 권고합니다. 곧 나의 일상, 나의 시간, 나의 직업과 인간관계까지, 우리가 몸으로 살아내는 모든 순간이 하느님께 올려드리는 살아 있는 제물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구원의 진리를 일상의 구체적인 실천으로 옮겨놓은 분이 바로 사부 성 베네딕도입니다. 성 베네딕도는 수도규칙 제43장에서 단호하게 선언합니다. “하느님의 일(Opus Dei)보다 아무것도 더 앞세우지 말라.” 성 베네딕도는 기도를 ‘하느님의 일’이라 부르며 삶의 최우선에 두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수도규칙에 따르면, 수도승들은 성무일도의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를 들으면, 손에 들고 있던 모든 것을 그 자리에 두고 가장 빠르게 성당으로 달려가야 합니다. 기도야말로 “하느님께서 내 삶의 주인이심”을 고백하는 가장 강력한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가치관과 타협하여 세속에 동화될 때, 우리는 순식간에 내 안위와 세속적 성공만을 따르는 ‘사람의 일’에 빠지게 됩니다. 내 생각과 욕심이 나를 지배하면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는 영적인 눈이 어두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 베네딕도의 가르침처럼 하루의 중심에 기도를 두고, 말씀으로 날마다 ‘정신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이룰 때’, 비로소 우리는 영적 분별의 은총을 얻게 됩니다. 무엇이 진정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그분 마음에 드는 선하고 완전한 ‘하느님의 일’인지 깨달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한 주간을 시작하며 우리 자신에게 정직하게 질문해 봅시다. “나는 오늘 세상의 기준에 동화되어 내 고집과 안위라는 ‘사람의 일’을 좇고 있습니까, 아니면 내 삶을 산 제물로 바치며 ‘하느님의 일’을 찾아 나아가고 있습니까?” 바쁜 일상의 한복판에서도 잠시 기도의 종소리에 귀를 기울입시다. 내 생각과 계산을 내려놓고 마음을 새롭게 합시다. 하느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고, 그분의 십자가 길을 따라 걸어갑시다. 그리하여 나의 말 한마디, 몸짓 하나, 일상의 작은 수고까지도 하느님 마음에 쏙 드는 거룩한 산 제물이 되어, 하느님의 선하신 뜻을 온전히 이루어 드리는 복된 신앙인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