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22주간금요일

1독서: 1코린 4,1-5 <주님께서 마음속 생각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복음: 루카 5,33-39 <그들도 신랑을 빼앗기면 단식할 것이다.>

제목: 신비의 관리인과 새 부대

1. 하느님 신비를 맡은 충직한 일꾼

바오로 사도는 자신을 두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누구든지 우리를 그리스도의 시종으로, 하느님의 신비를 맡은 관리인으로 생각해야 합니다.”(1코린 4,1)

주교나 사제는 교회의 주인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거룩한 은총을 정성껏 맡아 돌보고 나누어 주는 충직한 일꾼일 뿐입니다. 사목자가 맡은 가장 중요한 책무는 거룩한 성사를 거행하고, 복음을 선포하며, 새 계약의 진리에 성실히 봉사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미사 때마다 바치는 기도 안에서도 이 신비를 엿볼 수 있습니다. 사제가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고 인사하면, 수도자 여러분은 “또한 사제의 영과 함께” 하고 응답합니다. 이는 단순한 예의상의 인사가 아닙니다. 하느님의 신비를 맡은 일꾼을 통해 일하시는 성령께 온 교회가 한마음으로 경의를 표하는 신앙의 고백입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신비를 맡은 이에게 필요한 것은 세상의 화려한 능력이 아니라, 오직 주님을 향한 우직한 ‘충직함’입니다.

2. 인간의 잣대를 내려놓고 주님의 시선으로

그런데 우리가 주님께 충실하고자 애쓸 때, 종종 세상의 평가나 다른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곤 합니다. 사람의 눈은 겉모습만 볼 뿐, 그 사람 속 깊은 곳의 지향과 아픔을 다 헤아리지 못합니다. 사람들의 말과 세상의 평판은 바람처럼 쉬이 바뀝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세상 사람들의 평가나 자기 자신의 섣부른 판단에 기대지 않았습니다.

“나를 심판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미리 심판하지 마십시오. 그분께서 어둠 속에 숨겨진 것을 밝히시고 마음속 생각을 드러내실 것입니다.”(1코린 4,4-5)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함부로 이웃을 판단하거나 단죄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 마음의 불필요한 시기와 갈등을 가라앉히고, 인간적인 잣대 대신 하느님의 시선 앞에 머물게 합니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며 생기는 불안을 내려놓고, 우리의 속마음을 다 아시는 주님의 자비에 나를 온전히 맡길 때 참된 평화가 찾아옵니다. 매 순간 주님의 현존을 의식하며, 곁에 있는 자매를 주님의 눈으로 따뜻하게 바라보고 성실히 선을 행해야 하겠습니다.

3. 헌 부대를 벗고 새 포도주를 담는 영적 쇄신

이처럼 인간적인 잣대를 내려놓고 하느님의 시선으로 살아가려면, 우리 내면의 깊은 쇄신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은총은 굳어버린 마음속에는 결코 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낡은 습관에 머물러 있는 이들을 향해 이렇게 일침을 놓으십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묵은 포도주를 마시던 사람은 새 포도주를 원하지 않는다. 사실 그런 사람은 ‘묵은 것이 좋다.’고 말한다.”(루카 5,38-39)

이 말씀은 술의 맛을 따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오랜 습관에 젖어 변화를 거부하는 우리의 영적 타성을 짚어내시는 말씀입니다. 늘 하던 익숙함과 안락함에 갇혀 있으면, 복음이 주는 생생한 생명력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새로운 은총을 담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자신이 새 부대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형식주의와 낡은 습관이라는 헌 부대를 과감히 벗어던지고, 성령께서 이끄시는 은총의 힘으로 삶의 자리를 새롭게 정돈합시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참된 신랑이신 주님을 맞이하여, 매일의 일상 안에서 구원의 기쁨을 새롭게 누리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