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9.5.연중 제22주간 토요일                                                                          1코린4,6ㄴ-15 루카6,1-5

사랑의 힘, 진리, 자유, 행복, 아름다움

<사랑이신 주님은 판단의 잣대>

“주님은 당신을 부르는 모든 이에게,

 진실하게 부르는 모든 이에게 가까이 계시네.”(시편145,18)

날마다 일기 쓰듯 강론을 씁니다. 오늘도 이런저런 나눔입니다. 오늘 옛 현자의 말씀이 좋은 깨우침이 됩니다.

“바르지 않는 길에서 멈출 줄 아는 사람이 헤매지 않고 길을 걸을 수 있다.”<다산>

“만족할 줄 알면 욕됨이 없고,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아서 오래 갈 수 있다.”<도덕경>

문득 “너희는 멈추고 하느님 나를 알라.”<시편46,11ㄱ>는 말씀도 연상됩니다. 때로 멈추는 것이 삶의 지혜입니다. 어제 레오14세 교황은 옥스퍼드 대학 교수들과의 만남에서 “믿음과 이성이 일치”된 삶을 살았던 성 요한 헨리 뉴만 추기경을 보라는 말씀과 하신 말씀도 참 좋았습니다.

“진리를 추구하고, 통합적 인간학을 촉진하십시오.”

한마디로 사랑이자 진리이신 주님을 추구하고 살라는 말씀으로 이해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어제는 많은 수녀들을 비롯하여 고백신부에게 고백성사를 드리면서 드린 보속에 만족했습니다. 이건 큰 비밀 사항이 아니라 공개합니다.

“오늘 자기 전까지 하느님만을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도록 노력하십시오, 보속입니다.”

요즘 <말씀처방전>과 더불어 자주 드리는 보속입니다. 또 자주 드리는 권고입니다. 

“모두를 사랑공부, 겸손공부의 계기로 삼으십시오. 평생공부가 사랑공부, 겸손공부입니다.”

어제 3박4일의 공동실습 성지순례를 다녀온 수련수사로부터 소가죽으로 된 매일미사책을 싸는 덮개를 선물 받았습니다. 뜻밖의 사랑이 담긴 선물에 즉시 교체했습니다. 평생 잊지 못할 사랑의 선물입니다. 그 어머니가 이 아들에 대한 <1.남 말하지 않는다, 2.변덕이 없다, 3.손재주가 있다.>는 세 말마디도 내내 기억합니다.

사랑의 힘입니다. 사랑의 진리입니다. 사랑의 자유입니다. 사랑의 행복입니다. 사랑의 아름다움입니다. 사랑은 판단의 잣대입니다. 사랑해서 사람입니다. 오래전 다음 두 편의 자작시들도 <사랑의 사람>을 그리는 내용입니다. AI는 얼굴도 없고 사랑도 못하는 기계일 뿐 생명이 아닙니다.

“몸은 떠났어도 향기로 남아 있는 이들이 있다

 방안 가득 은은한 향기에 가만히 뒤돌아보니

 보일 듯 말 듯 작고 소박한 동양란 몇 송이들

 아마 겸손의 향기, 존재의 향기도 저러할 거다”<겸손의 향기;2007.5.>

“늘 만나도 좋고 편안한 사람

 하늘 향해 활짝 열린 창문 같은 사람

 늘 걸어도 그리운 오솔길 같은 사람

 작고 소박해도 향기 은은한 난같은 사람”<늘 만나도;2007.9. >

그대로 사랑이신 주님을 닮은 사람입니다. 오늘의 말씀에서 우리는 이런 사랑의 대가이자 달인이신 세 분을 만납니다. 바로 복음에서 다윗과 예수님, 제1독서에 바오로 사도입니다. 

오늘 역시 어제에 이은 단식논쟁입니다. 헌 부대의 고루한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편협한 율법주의자 바리사이가 또 주님께 시비를 걸고 대듭니다. 왜 당신 제자들이 밀 이삭을 뜯으며 안식일법을 위반하느냐는 것입니다. 배고픈 현실을 도외시한 몰인정한 판단입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예를 들면서 자신의 행위에 대한 이해를 구합니다. 다윗이 배가 고팠을 때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가 아니면 아무도 먹어서는 안되는 제사 빵을 집어서 먹고 자기 일행에게 주었던 실례입니다. 그대로 하느님 사랑에, 마음에 정통했던 다윗이기에 이런 자유로운 사랑의 실천입니다. 

저 역시 고백성사 못보고 성체를 영했다는 분에게 “잘 했습니다. 우선 배고픈데 먹고 봐아죠, 그리고 고백성사를 보면 됩니다. 주님이 먹지 말라 말씀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어지는 예수님의 말씀이 오늘 복음의 절정이자 결론입니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모든 율법을 상대화하는 사랑이신 주님입니다. 절대적 법은 사랑뿐이요 사랑의 주님이 판단의 잣대가 됩니다. 예수님 같으면 어떻게 판단하실까 생각하면 답이 나옵니다. 그러니 올바른 분별력을 위해서는 사랑이신 주님과의 깊은 사랑의 관계가 필수전제조건이 됩니다. 

바로 이 그리스도 예수님 사랑에 목숨을 내놓은 바오로 역시 스승이자 주님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닮아 사랑의 대가, 사랑의 달인입니다. 코린도 신자들은 물론 오늘 우리의 무딘 마음을 일깨우는 다음 바오로의 고백입니다. 이런 주님으로 인한 자발적 가난과 고난. 자유로움이 바오로의 사랑의 깊이를 반영합니다.

“지금 이 시간까지도, 우리는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매맞고 집 없이 떠돌아  다니고 우리 손으로 애써 일합니다. 사람들이 욕을 하면 축복해 주고, 박해를 하면 견디어 내고, 중상을 하면 좋은 말로 응답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쓰레기처럼, 만민의 찌거기처럼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내가 복음을 통하여 여러분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사제들은 물론 수도자들, 신자들의 사랑의 현주소를 환히 비춰주는 <주님의 거울>같은 말씀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고 분발하게 합니다. 사랑의 교과서는 사랑의 주님에 이어 우리의 평생 사랑공부에, 겸손공부에 분투의 노력을 자극하는 좋은 참고서가 됩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평생 사랑공부, 겸손공부에 결정적 도움을 주십니다.

“주님은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의 소망을 채우시고,

 그 애원을 들으시어 구해 주시네.”(시편145,19).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