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제22주간토요일
1독서: 1코린 4,6ㄴ-15 <우리는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었습니다.>
복음: 루카 6,1-5 <당신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
제목: 심판의 눈길에서 자비의 눈길로
1. 손으로 비벼 먹은 밀
신명기 법을 보면 길 가던 나그네가 배가 고플 때, 남의 밭에서 손으로 이삭을 잘라 허기를 달래는 것을 허락해 주었습니다(신명 23,26 참조). 굶주린 사람의 생명을 먼저 살리려는 하느님의 따뜻한 배려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밀밭을 지나며 “이삭을 뜯어 손으로 비벼 먹었다”(루카 6,1)는 이유로 문제를 삼습니다. 당시 율법 규정에는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할 일 서른아홉 가지가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중에는 곡식을 거두는 ‘수확’과 알곡을 떨어내는 ‘탈곡’도 들어 있었습니다. 바리사이들의 눈에는 제자들이 이삭을 뜯은 것은 수확이고, 손으로 비벼 껍질을 벗긴 것은 탈곡이었던 것입니다. 안식일 법을 두 개나 어겼다는 고발이었습니다.
사람을 살리고 참된 쉼을 주어야 할 안식일이, 배고픈 사람을 감시하고 옥죄는 차가운 법 조항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율법의 글자에만 갇혀 사람의 배고픔과 아픔을 보지 못하는 종교는 생명을 살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성전의 제사 빵을 나누어 먹었던 다윗의 절박함을 일깨우시며, 하느님의 법은 사람을 짓누르는 짐이 아니라 살리는 은총임을 가르쳐 주십니다.
2. 받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바리사이들이 율법의 잣대로 남을 쉽게 판단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기는 법을 잘 지키고 의롭다는 영적 우월감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은 손에 쥔 것이 조금만 늘어나도 다 제 힘으로 이룬 줄 알고 어깨에 힘을 주기 쉽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스스로 의롭다고 우쭐대며 서로 편을 가르던 코린토 신자들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그대가 가진 것 가운데에서 받지 않은 것이 어디 있습니까? 모두 받은 것이라면 왜 받지 않은 것인 양 자랑합니까?”(1코린 4,7)
우리가 공동체 안에서 바치는 성실한 기도, 땀 흘려 거둔 소임의 열매, 오랜 수도 생활의 연륜까지도 모두 하느님께서 거저 주신 선물입니다. 내 힘으로 이루었다고 착각하는 순간, 그 교만은 곁에 있는 자매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고 공동체의 일치를 깨뜨립니다.
잘잘못을 따지며 이끌어 주는 스승은 많아도, 생명을 낳고 품어 주는 부모는 드뭅니다(1코린 4,15 참조). 바오로 사도의 따끔한 훈계는 신자들을 부끄럽게 만들려는 벌이 아니라, 모든 것을 거저 주신 하느님 은총 앞에 다시 겸손하게 머물게 하려는 아버지의 간절한 사랑이었습니다.
3. 자비로 덮어주는 연대
우리의 수도 생활 역시 엄격한 규칙이나 밖에서 오는 강요만으로는 살아낼 수 없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 중심을 건드리실 때, 비로소 무거운 짐을 벗고 하느님 자녀다운 자유 안에서 참된 사랑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수도 공동체는 규칙을 들이대며 서로의 부족함을 들추어내는 자리가 아닙니다. 배고픈 제자들의 허기를 너그럽게 채워 주신 주님의 눈길처럼, 곁에 선 자매의 모자람과 아픔을 하느님의 자비로 덮어 주는 거룩한 사랑의 자리입니다.
겉으로만 그럴듯한 율법의 거친 껍질은 벗겨 내고, 주님의 자비라는 알곡만을 남겨야 하겠습니다. 서로를 저울질하던 잣대를 내려놓고, 주님께 거저 받은 한없는 사랑으로 자매들의 빈자리를 따뜻하게 채워 주는 참된 수도자로 오늘 하루를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