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1코린 10,14-22 / 복음: 루카 6,43-49

반석 위에 인생 집을 지읍시다
“말씀과 미사전례의 실행”

“내게 주신 모든 은혜, 무엇으로 주님께 갚사오리.
구원의 잔 받들고서, 주님의 이름을 부르리라.”(시편116,3-4)

반석 위에 인생 집짓기는 죽을 때까지 늘 현재 진행형입니다. 오늘 말씀의 가르침대로 말씀과 미사전례의 한결같은 실행이 으뜸입니다. 오늘도 이런저런 유익함을 나눔으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가까이 사는 이의 평가가 제일 정확합니다. 꼭 일 년 전 혼인미사 주례했던 40대 후반 부부와 신부측 아버지가 수도원을 방문했고 자매에게 남편의 삶을 물었습니다.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합니다. 일 년 동안 5개 자격시험에 합격했고 하나만 남았습니다.”

“가까이 있는 분의 평가가 제일입니다. 정말 남편 안드레아는 훌륭한 삶을 사셨네요.”

이어 부부가 예수님 부활상 앞에서 다정히 찍은 전송해준 사진을 보고 보낸 답글입니다.

“주님 안에서 늘 연인이자 친구로 행복하게 사세요. 멋진 사진 감사드리며 주님의 축복을 빕니다. 배경의 예수님 모습이 볼수록 좋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어제 문득 떠오른 다짐의 시입니다.

“몇 날 폈다 진 꽃들

일 년을 꼬박 기다려야 다음 해 꽃들이구나

어떻게 일 년을 기다리나

소중한 하루

하루하루 날마다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평생처럼

기적처럼 살아야 하겠다

겸손히 배우는 마음,

감사하는 마음, 놀라는 마음으로!”<기적처럼;2026,9,11.>

레오 14세 교황은 새주교들 연수에서 “주교는 날마다 그의 백성을 더욱 깊이 사랑하는 것을 배우는 사람이다.”라 정의하셨습니다. 주교뿐 아니라 믿는 이들 모두가 날마다 새롭게 배워야 하는 사랑과 겸손입니다. 불교 해인총림 방장 학산대원 대종사의 하안거 해제법문중, “공부해서 깨닫지 못하면, 한평생 허망한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라는 한대목도 생각납니다. 성무일도중 “주님의 지혜를 받지 않으면 쓸모없는 인간이외다”(지혜9,6ㄴ), 한대목도 생각납니다. 한결같은 삶을 지향하는 오래전 두 편의 자작시도 눈에 띄었습니다.

“늘 나서지 않고

뒤로 물러나

배경의 품이 되어주는

산 같은 임이 계시기에 자유롭고 편안히

살 수 있는 거다”<산같은 임이 계시기에;2007.11. >

“가을 날 쌀쌀해 질수록

청초함 더해가는

한결같은

국화꽃들

바라봄 자체가 위로요 힘이구나”<2007.11. >

한결같은 성실한 삶의 모습을 상징하는 내용들이 오늘 말씀의 이해에 결정적 도움이 됩니다. 오늘 복음은 루카의 평지설교 후반부 결론 부분으로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안다”와 “내 말을 실행하여라” 두 주제로 나눠집니다.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는다. 나쁜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 나무는 모두 그 열매를 보면 안다.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애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너무나 자명한 진리입니다. 사람이, 마음이 좋아야 그 열매인 생각도 글도 말도 행동도 좋습니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내쏟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마음의 정화와 성화가 우선입니다. 바로 여기서 노력이 빛을 발합니다. 100% 하느님 손에 달린 듯이 기도하고 100% 내 손에 달린 듯이, 주님의 학인다운, 주님의 전사다운 백절불굴의 항구한 노력입니다.

타고난 마음이 나쁘다 좌절할 것이 아니라, 주님 향한 열렬한 사랑의 동력으로 좋은 덕목을 <선택하고 훈련하여 습관화>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본에 충실한 기초를 단단히 다지는 삶입니다. 이건 제가 늘 강조하는 사항입니다. 이러면 마음의 정화와 성화가 뒤따르고 삶의 좋은 열매들과 더불어 운명이 바뀝니다. 다음 주님 말씀처럼 반석 위의 인생 집짓기도 성공적으로 수행될 것입니다.

“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사람은 땅을 깊이 파서 반석 위에 기초를 놓고 집을 짓는 사람과 같다. 홍수가 나서 강물이 집에 들이닥쳐도, 그 집은 잘 지어졌기 때문에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이래야 안에서 무너지지도 않습니다. 이런 반석 위의 인생 집짓기에 말씀의 실행과 더불어 미사전례 실행이 제일입니다. 바로 제1독서 바오로 사도의 <성찬례와 이교제사>에서 성찬례의 진가가 잘 드러납니다. 이교제사를 마귀의 우상에 참여하는 것이라 질타하시며 하시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이 시공을 초월하여 우리의 무지를 일깨웁니다.

“나는 여러분이 마귀들과 상종하는 자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주님의 잔도 마시고 마귀들의 잔도 마실 수는 없습니다. 주님의 식탁에도 참여하고 마귀들의 식탁에도 참여할 수는 없습니다.”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습니다. 진보는 분열로 망하고 보수는 부패로 망한다 하는데 마음의 분열, 내적분열의 내적파괴가 무서운 것입니다. 안에서 분열과 부패로 흔들리고 무너지면 아무도 못 도와줍니다. 눈에 보이는 박해는 대상의 적이 분명하지만 오늘날 마귀와 우상의 적들은 소리 없이 스며들어 속화와 더불어 내적분열과 부패를 일으키기에 분별하기가 참 힘듭니다.

우리를 포위하고 있는 물질주의, 소비주의, 쾌락주의, 개인주의 모두가 우리를 내적으로 병들게 하고, 분열과 부패로 이끄는 현대판 마귀요 우상들입니다. 이들이 분열인생, 부패인생으로 만들며 그런 인생 집에 대한 다음 묘사가 우리의 분투의 노력을 촉구합니다.

“내 말을 듣고 실행하지 않는 자는, 기초도 없이 맨땅에 집을 지은 사람과 같다. 강물이 들이 닥치자 그 집은 곧 무너져 버렸다. 그 집은 완전히 허물어져 버렸다.”

주변에서 이런 실패한 인생 집들 자주 보지 않습니까? 삶은 선택입니다. 반석 위의 인생 집이나 모래 위의 인생집이냐? 선택입니다. 이런 인생 집은 늘 현재진행형입니다. 바로 반석 위의 인생 집을 선택하여 주님 말씀과 미사전례의 한결같은 실행의 노력으로 보강해갈 때 내적분열과 부패는 저절로 미연에 방지됩니다.

또 주님 말씀과 전례가 영적 효소가 되어 부패인생을 막아주고 향기 그윽한 발효인생으로 만들어 줍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내외적 일치와 더불어 반석 위의 인생 집짓기에 결정적 도움을 줍니다.

“주여, 당신 이름 부르며,
찬미의 제사를 올리리이다.”(시편116,8).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