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1코린 15,12-20 / 복음: 루카 8,1-3
교회 공동체의 일치의 여정
“중심, 목표, 역할”
“주님, 당신 눈동자처럼 저를 보호하소서.
당신 날개 그늘에 저를 숨겨 주소서.”(시편17,8)
공동체를 떠나 살 수 없는 인간입니다. 공동체를 떠나선 구원도 없고 아니 사람이 될 수도 없습니다. “사람(人)” 이라는 글자가 공동체적 인간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날로 늘어나는 1인가구도 공동체 삶의 결여로 많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늦은 나이에 결혼하여 가정을 이룬 부부 결혼식 미사 강론 때 늘, 꼭 환기시키는 말마디도 생각납니다.
“서로가 구원했습니다. 혼자서는 결혼 못합니다. 서로만 아니라 양가 기뻐하는 부모들도 구원했습니다. 그러니 서로 사랑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홀로>의 삶도 공동체 안에서 <더불어>의 삶과 균형과 조화를 이뤄야 건강한 삶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큰 가정 교회 공동체의 역할이, 특히 공동체의 일치를 이뤄주는 미사전례의 역할이 참 중요하고 고맙습니다. 옛 현자의 말씀도 공동체 삶에 좋은 도움이 됩니다.
“남을 들여다보기는 쉬워도 나를 깨닫기는 어렵다. 그래서 옛 선비들은 허물을 지적받을 때 기뻐했다.”<다산>
“다른 사람을 아는 것은 ‘슬기로움(智>’이지만, 자기를 아는 것은 ‘현명함(明)’이다.”<도덕경>
그러니 공동체 형제들의 진솔한 충고에 서운해 할 것이 아니라 감사해야 합니다. 공동체 삶 중에 끊임없이 자기를 알아갈수록 맑고 밝은 겸손한 현자의 삶이겠습니다. 저는 그래서 수도공동체를 큰 스승으로 여기고 배우며 그 은혜에 늘 감사합니다. 하나하나가 <하느님의 귀한 선물들>인 수도형제들입니다. 아주 예전 공동체 삶의 은혜를 고백한 두 편의 자작시도 생각납니다. 오래전 알제리에서 순교한 일곱 분의 아틀라스 트라피스트 수도원 수도자들의 사진을 보며 쓴 <얼굴>이란 시입니다.
“얼굴은 마음이다
꽃보다 아름다운
신비로움이 깃든 얼굴들이다
평생을 임사랑 전념했기에
임닮아 은총으로 화안히 빛나는 얼굴들이다
영원한 생명을 본다“<2001.5.28.>
나이 40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데 날로 주님을 닮아가고 있는 얼굴인지 성찰하게 합니다. 또 하나 <공동체의 아름다움>이란 자작시입니다.
“한나절, 하루, 며칠을 살았든 시간은 문제가 아니다
눈길 닿지 않는 배밭 낮은 땅
작디작은 하아얀 별무리 같은 야생화 주름잎 꽃들!
공동체의 아름다움이구나
하나하나 모두가 하늘 향해 활짝 피어나
주변을 환히 밝힌다
사람도 하나하나 모두가
빛나는 별이 되어 살 수는 없나
향기로운 꽃이 되어
존엄한 품위의 사람이 되어 살 수는 없나”<2001.6.27.>
바로 오늘 복음이 교회 공동체의 일치의 여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3절로 이뤄졌지만 서두부터 공동체의 원리를 잘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절대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밤에는 혼자서 외딴곳에 머물러 기도했지만 낮에는 사람들과 함께 했습니다.
‘그 뒤에 예수님께서는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시고 그 복음을 전하셨다. 열두 제자도 그분과 함께 다녔다.’
공동체 삶의 중심이 예수님임이 자명히 드러납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열두 제자들과 여러 여자들이 다 달라도 공동체의 중심인 주님을 바라보기에 <획일성>의 강제적 일치가 자유로운 <다양성>의 일치가 가능합니다. 그리고 공동체가 바라보는 궁극의 비전이나 목표가 분명하니 바로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복음을 전할 뿐 아니라 하느님의 나라와 복음을 사는 복음적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그리고 마리아 막달레나, 요안나, 수산나와 다른 여자들이 자기 재산으로 예수님 일행의 <배경이 되어> 시중을 드는 일에 충실하니 분담된 역할의 조화가 참 절묘하고 아름답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최전선에서 복음 선포로 섬김의 역할에 충실하다면, 예수님을 사랑하는 헌신적 여자들은 시중드는 섬김의 역할에 충실합니다. 당시 팔레스티나에서 여자들의 이런 행동은 매우 이례적일 뿐만 아니라 크게 물의를 일으키는 일이었습니다(요한4,27;갈라3,28). 그러나 이 여자들 모두가 구원자 예수님을 만나 위로와 치유의 구원을 받은 분들이었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그대로 교회 공동체의 일치의 여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복음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교회공동체에 몸담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죽으시고 부활하신 파스카의 예수님이 중심이 되시고, 공동체의 일치의 여정을 인도하신다는 점이 큰 자랑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열렬히 고백하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복음 선포도 헛되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됩니다. 여러분이 지은 죄 안에 있을 것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이들도 멸망하였을 것입니다. 우리가 현세만을 위하여 그리스도께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모든 인간 가운데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죽은 이들의 맏물이 되셨습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성령 안에서 파스카의 예수님을 중심한 우리 수도교회공동체의 일치의 여정에 참 좋은 도움이 됩니다.
“저는 의로움으로 당신 얼굴 뵈옵고,
깨어날 때 당신 모습에 흡족하오리다.”(시편17,15).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