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헬1,2-11
루카9,7-9
오, 주 하느님!
“허무와 무지에 대한 답은 하느님뿐이다”
“주님, 당신은 대대로
저희 안식처가 되셨나이다.“(시편90,1)
오늘부터 제1독서는 코헬렛입니다. 읽을 때 마다 신선한 충격을 받습니다. 종교 유무를 떠나 누구나 공감하는 코헬렛의 실존적 체험의 고백입니다. 오늘 머리말 일부만 인용합니다.
“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태양 아래에서 애쓰는 모든 노고가 사람에게 무슨 보람이 있으랴?
한 세대가 오지만 땅은 영원히 그대로다.
있던 것은 다시 있을 것이고 아루어진 것은 다시 이루어질 것이니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이란 없다.”
누가 반박할 수 있을 런지요? 허무와 무지에 대한 유일한 답은 미래의 총아처럼 각광을 받고 있는 AI도 아닌 오직 <빛과 생명>이자 <신망애와 진선미>의 우리 주 하느님뿐입니다. 제겐 AI가 판도라 상자가 열린 듯도 하고, 위태롭기가 또 하나의 비벨탑 쌓기처럼 보입니다. 비관주의자, 염세주의자, 허무주의자 같은 코헬렛이지만 결론 말씀에서 궁극의 희망이자 지혜이신 하느님이 허무와 무지에 대한 유일한 답임을 고백합니다.
“마지막으로 결론을 들어보자.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들의 계명을 지켜라. 이야말로 모든 인간에게 지당한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좋든 나쁘든 감추어진 온갖 것에 대하여 모든 행동을 심판하신다.”
우리 인간이 평생공부의 필수과목이 <하느님 공부>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이 아니곤 인간이 허무와 무지의 심연의 어둠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빛만이 허무와 무지의 어둠을 밝힐 수 있습니다. 마침 어제 최종적으로 수정하여 나눈 제 <오, 주 하느님!>이라는 자작 고백시가 허무와 무지에 대한 답임을 깨닫고 다시 나눕니다.
“산 앞에 서면
당신 앞에 서듯 행복하다
집무실 문 여니
숨통이 확 트이는 한줄기 시원한 가을바람,
지옥에는 바람이 없단다
맞네, 바람은 희망, 희망 없는 곳이 바로 지옥이 아니던가
집무실 문 열면
늘 거기 그 자리 하늘 배경의
가슴 가득 안겨오는 초록빛 생명 가득한 산
주님을 바라보듯 물끄러미 바라본다
황홀하고 충만하다
눈부시지 않아 좋다
말하지 않는다
침묵 중에 고요히 머문다
산이 된다
온몸에 퍼지는 행복감
산의 깊이는 어디쯤일까, 헤아릴 길 없구나
날마다 보고 배워도 끝이 없다
마르지 않은 영감의 샘, 생명의 샘 같다
늘 놀랍고 새롭고 좋다
참 좋은 스승이자 주님 같은 산이다
오, 주 하느님!”<2026,9.23>
제게는 살아 계신 하느님의 현존 같은 산山입니다. <밖으로는 산山, 안으로는 강江>을 사는 <산과 강의 영성>이 제 소원입니다. 그대로 일종의 하느님 찬미와 감사의 고백시입니다. 허무와 무지에 대한 답으로 제출해도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라는 불멸의 고전을 썼던 중세기의 대 영성가 ‘토마스 아 캠피스는 삶에 대한 코헬렛의 전적 부정적 묘사는 최고의 지혜라 생각했습니다. 왜냐? 그것은 모든 것이 헛되고 덧없다는 결론에 도달함으로, 하느님을 섬기는 일에 유일한 우선권을 주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불안해 하는 헤로데의 모습이 잘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대로 하느님 중심 부재의 삶을 보여줍니다. “그러면 이 사람은 누구인가?” 예수님의 출현에 궁금해하고 당황해하며 그를 만나고 싶어 합니다. 의인 세례자 요한을 참수한 후 그의 불안한 마음이, 양심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답은 철저한 회개를 통해 하느님 중심으로 그의 무질서한 내적 삶을 재정립하는 길뿐이지만 요원합니다.
그러나 헤로데는 단지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정치적 야망을 채우려할 뿐입니다. 그는 선택을 했고 우리 역시 그러합니다. 하느님 중심으로 삶을 재정립할 것인가? 혹은 하느님 부재의 삶을 선택할 것인가? 각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참으로 인간의 근원적 고질적 질병과도 같은 허무와 무지에 대한 궁극적 치유와 구원의 명약은 <우리 주 하느님>뿐입니다.
그러니 평생 영원한 현역이 되어 하느님 중심의 찬미와 감사의 삶에 매진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하루하루 날마다 찬미와 감사의 공동전례기도인 시편성무일도와 미사를 봉헌하는 우리들입니다. 사실 미사전례보다 더 좋은 힐링의 치유와 자유도 없습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의 허무와 무지의 병을 점차적으로 치유해 주십니다.
“주님, 새벽부터 넘치도록 자비를 베푸시어,
우리 한생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시편90,14).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