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독서: 에제 18,25-28 <악인이라도 죄악을 버리고 돌아서면, 자기 목숨을 살릴 것이다.>
2독서: 필리 2,1-11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복음: 마태 21,28-32 <맏아들은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제목: 주님의 마음을 품고 나아가는 순례길
1. 굽은 길을 바로잡는 회개
“주님의 길은 공평하지 않다.”(에제 18,25) 이스라엘 백성들은 삶이 힘들 때마다 조상 탓이나 세상 탓을 하며 이렇게 불평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에제키엘 예언자를 통해 그 생각을 단호하게 바로잡으십니다. “내 길이 공평하지 않다는 말이냐? 오히려 너희의 길이 공평하지 않은 것 아니냐?”(에제 18,25) 하느님께서는 지나간 과거나 집안의 허물에 갇혀 핑계 대는 것을 바라지 않으십니다.
에제키엘 예언자는 과거의 잘못에 얽매이지 않고 지금 스스로 결단하는 회개의 중요성을 분명하게 전합니다. “악인이라도 자기가 저지른 죄악을 버리고 돌아서서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면, 그는 자기 목숨을 살릴 것이다”(에제 18,27). 하느님께서는 죄인이 멸망하는 것을 결코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성 베네딕도 수도 규칙 머리말에서도 에제키엘서의 가르침을 인용하며,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연장해 주시는 까닭은 악한 행실을 고치고 돌아설 수 있는 시간을 주시기 위함이라고 강조합니다. 구원의 기준은 지나간 과거의 모습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죄에서 돌아서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삶에 달려 있습니다.
2. 종의 모습을 취하신 비움
이렇게 자신의 삶을 바로잡는 회개의 발걸음은, 내 안의 욕심을 내려놓는 겸손으로 이어집니다. 사도 바오로는 이기심이나 허영심을 버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를 자기보다 낫게 여기라고 당부합니다. 그리고 권고의 정점에서 귀한 말씀을 건네줍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필리 2,5).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셨습니다. 그리스어 ‘케노시스’가 뜻하는 비움은 신성을 잃어버리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높은 지위와 권한을 자기 몫으로 챙기지 않고, 사람들의 비천하고 고통스러운 삶의 자리로 온전히 낮추어 들어오셨음을 뜻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러한 주님의 비움을 본받아 서로를 아끼고 섬겨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성부께 순종하신 그분의 겸손은 우리가 세상과 이웃을 대할 때 어떤 마음을 지녀야 하는지 잘 보여줍니다.
3. 말 대신 행동으로 걷는 길
자신을 낮추신 주님의 겸손은 말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실천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에게 ‘두 아들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는 아버지를 향해 둘째 아들은 “가겠습니다, 아버지!”(마태 21,30) 하고 대답만 번지르르하게 해놓고는 가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첫째 아들은 처음에는 “싫습니다”(마태 21,29) 하고 거절했으나 나중에 뉘우치고 포도원으로 향했습니다.
스스로 율법을 잘 지킨다고 자부하며 구원의 특권을 독점했다고 믿던 종교 지도자들은 주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큰 죄를 지었어도 뉘우치고 말씀에 순종한 세리와 창녀들이 오히려 하느님 나라에 먼저 들어갔습니다. 이 비유는 과거에 어떤 처지였는가보다 지금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앞에서 마음을 고쳐먹고 실천하는 일이 더 중요함을 일깨워 줍니다. 구원은 외적인 신분이나 입에 발린 대답이 아니라, 삶의 구체적인 행동으로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데에 주어집니다.
4. 나그네를 향한 순례의 발걸음
오늘은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입니다. 고향을 떠나 낯선 땅을 살아가는 이들의 처지는, 영원한 고향인 하느님 나라를 향해 걸어가는 우리 자신의 삶과 깊이 닿아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이주는 단순한 자리 이동을 넘어, 아브라함처럼 세상에 집착하지 않고 하느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순례를 상징합니다.
제1독서가 전하듯 편견과 기득권을 내려놓고 올바름을 실천하는 일은, 국경을 넘어온 약자들을 돌보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우리 삶으로 드러내는 길입니다. 제2독서의 가르침처럼 당신 자신을 비워 종의 모습을 취하신 그리스도의 겸손을 닮을 때, 우리는 이주민과 난민을 남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지체’로 온전히 품어 안을 수 있습니다.
말로는 가겠다고 하고 가지 않은 둘째 아들처럼 안일한 동정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이신 그리스도께서 당신 영광을 내려놓으셨듯, 우리 역시 내 안의 기득권과 편견을 비우고 낯선 이들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국경과 피부색을 넘어 소외된 나그네들을 따뜻하게 품고 돕는 행동하는 회개의 열매를 맺어가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