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독서: 욥 42,1-3.5-6.12-17 <이제는 제 눈이 당신을 뵈었습니다. 그래서 저 자신을 부끄럽게 여깁니다.>
복음: 루카 10,17-24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제목: 눈으로 뵙는 은총
1. 세상의 이치로 풀리지 않는 고통
우리는 착하게 살면 복을 받고,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다고 믿습니다. 땀 흘려 열심히 일하면 그만큼 잘 살아야 맞습니다. 하지만 살다 보면 이 생각이 와르르 무너질 때가 있습니다. 착실하게 살던 가장이 몹쓸 병에 걸리기도 하고, 아무 잘못도 없는데 큰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착한 사람에게 왜 이런 불행이 닥치는지 세상의 이치로는 다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구약 성경의 욥도 바로 이런 기막힌 처지에 놓였습니다. 욥은 끝없는 고난 속에서 자기의 결백을 밝히려 애썼습니다. 머리로 하느님의 뜻을 따져 보려고 안간힘도 썼습니다. 하지만 친구들과 벌인 말씨름은 아무런 위로가 되지 못했습니다. 남에게 전해 듣기만 했던 얕은 지식은 거센 시련 앞에서 아무 힘도 쓰지 못했습니다.
2. 고집을 꺾고 하느님을 뵙는 은총
욥의 아픔은 사람의 말로 풀리지 않았습니다. 폭풍우 속에서 살아 계신 하느님을 직접 만났을 때에야 비로소 풀렸습니다. 크고 높으신 하느님을 마주한 욥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당신에 대하여 귀로만 들어 왔던 이 몸, 이제는 제 눈이 당신을 뵈었습니다. 그래서 저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며 먼지와 잿더미에 앉아 참회합니다.”(욥 42,5-6)
이 고백은 머리로만 알던 하느님을 온몸으로 만났다는 뜻입니다. 하느님을 참으로 만나면 사람은 결코 잘난 체할 수 없습니다. 크신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작고 모자람을 깨닫고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고통과 시련은 우리를 망치려고 오는 벌이 아닙니다. 내 고집과 교만을 털어내고 하느님을 똑바로 보게 하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내 생각을 내려놓고 무릎을 꿇을 때, 우리는 귀로만 듣던 자리에서 하느님을 직접 뵙는 자리로 나아갑니다.
3. 언제나 곁에 계시는 주님의 자비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악령을 쫓아냈다며 잔뜩 들떠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눈에 보이는 성과보다 더 중요한 것을 짚어 주십니다.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루카 10,20) 하고 이르십니다. 이어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루카 10,21) 하고 기도하십니다. 계산이 빠르고 아는 체하는 사람은 제 생각에 갇혀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반면에 어린아이처럼 마음을 비운 이들은 하느님의 뜻을 그대로 알아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루카 10,23)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의 사람들은 그토록 보고 싶어도 보지 못했던 구원을 우리는 지금 미사와 성사 안에서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욥이 고집을 꺾었을 때 하느님의 큰 자비를 입었습니다. 우리도 세상의 셈법을 내려놓고 철부지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보이지 않아도 묵묵히 곁을 지키시는 주님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하느님의 크신 자비 안에서 꿋꿋하게 살아갑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