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독서: 갈라 1,6-12 <복음은 어떤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고 배운 것도 아닙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하여 받은 것입니다.>

복음: 루카 10,25-37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제목: 자비의 실천

1. 단 하나의 복음

바오로 사도는 갈라티아 신자들이 인간적 사상과 철학에 흔들리며 다른 복음으로 돌아서는 모습을 보고 강하게 꾸짖습니다. 그가 전한 복음은 사람이 만들어낸 지식이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과의 인격적 만남 속에서 그분이 직접 드러내 보여주신 하느님의 생생한 구원 진리입니다. 여기서 계시는 단순히 성경 지식이나 교리 정보를 전달받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온 인류를 향한 하느님의 구원 신비 그 자체가 바오로의 영혼 안에 밝히 드러났음을 의미합니다. 신앙과 복음은 단순히 책으로 배워 머리로 이해하는 교리 체계가 아니라,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마주하고 체험하는 삶입니다. “누가 여러분이 받은 것과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그는 저주를 받아 마땅합니다.”(갈라 1,9). 이 말씀은 십자가의 구원과 파스카 신비를 배제하려는 세속적 시도에 맞서는 절대적 기준입니다.

2. 참된 이웃

율법 교사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율법을 인용하며 자신을 정당화하려 했습니다. 그는 사랑받을 대상을 선별하기 위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루카 10,29)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질문의 틀을 바꾸어 놓으십니다. 예루살렘에서 예리고로 내려가다 강도를 만나 초주검이 된 사람을 두고 종교적 정결을 내세운 사제와 레위인은 길 반대쪽으로 지나쳐 버렸습니다. 반면 당시 유대인들과 깊은 적대 관계에 있던 사마리아인은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어 상처를 치료하고 여관으로 데려가 돌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루카 10,36) 하고 물으셨습니다. 이웃은 내가 규정하는 대상이 아니라 고통받는 이에게 다가가 스스로 이웃이 되어 주는 구체적인 행동입니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루카 10,37) 하신 명령은 관념적 지식이 아닌 조건 없는 자비의 실천을 요구합니다.

3. 우리의 사마리아인

교부 성 암브로시오는 이 비유의 진정한 의미를 구세사적 차원에서 다음과 같이 해석합니다. 강도를 만나 죄와 상처로 초주검이 된 이는 낙원에서 쫓겨나 스스로를 치유할 수 없는 무력함과 비참함에 빠진 아담, 곧 전 인류를 가리킵니다. 이 절망적인 상태에 놓인 인간에게 하늘에서 내려와 자비의 은총으로 친히 다가가 이웃이 되어 주신 착한 사마리아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상처에 부어주신 기름과 포도주는 인류의 상처를 치유하는 십자가의 은총과 교회의 성사를 상징합니다.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이 만든 차별과 배척의 장벽을 허무는 자비의 실천을 통해, 친히 우리의 이웃이 되어 주신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야 합니다. 나아가 언제나 우리를 치유하시고 함께하시는 주님의 자비에 전적으로 의탁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