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 1,6-12 루카 10,25-37
자비를 베푸는 영원한 생명의 삶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삶은 사랑을 배우는 사랑의 학교입니다. 날마다 사랑의 학교에서 사랑을 배워야 하는 초보자 요, 죽어야 졸업인 영원한 현역의 <사랑의 학인>입니다. 그러니결코 사랑 공부와 실천에 지치는 일이 없어야하겠습니다. 일상의 모두가 사랑의 스승이지만 영원한 사랑의 스승은 주님 한 분 뿐입니다. 가을 태양이 상징하는 바 사랑의 하느님입니다. <임을 뵈었네> 라는 자작시가 생각납니다.
“잠시 밭에 일 나갔다가 임을 뵈었네
온 몸에 쏟아지는
사랑 가을 햇살에 가만히 뒤돌아
눈 들어 하늘 보니
오 부드러운 임의 얼굴 가을 태양
온 누리에 쏟아지는
사랑 햇살에 붉게 물들어가는 단풍
익어가는 가을 열매들
떠가는 흰 구름과 장난하면서도
온 누리에 끊임없이 쏟으시는 사랑 햇살에
임의 눈길 사랑 가득한 가을”<2008.10. >
바로 오늘 지금 여기 가까이에서서 시작되는 영원한 생명의 사랑 체험, 하느님 체험입니다. 오늘 복음의 율법교사는 주님께 묻습니다. 불순한 의도이지만 궁극의 관심사를 묻습니다. 예나 이제나 스승을 찾아 물었던 영원한 화두와 같은 구도자들의 공통적 질문입니다.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율법교사의 추상적 물음에 주님은 구체적 정답으로 이끌어 냅니다. ‘율법에서 너는 어떻게 읽고 배웠느냐?’는 주님의 물음에 율법교사는 자신 있게 사랑의 이중계명을 말합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한다.‘ 하였습니다.”
답은 이것 하나뿐입니다. 한자로는 경천애인 고 김대중 토마스 모어 대통령의 좌우명이기도 했습니다. 사랑은 추상 명사가 아니라 실천 동사입니다, 가장 큰 계명인 사랑의 이중 계명을 율법교사가 진정 실천해왔다면 영원한 생명에 대해 묻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랑 체험은 영원한 생명의 하느님 체험입니다. 이런 체험 부재로 인해 무지의 감옥생활이요, “헛되고 헛되다!” 허무를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율법교사의 부족을 직시한 예수님의 대답이 참으로 정확하고 간명합니다.
“옳게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서 참으로 진짜 살아 있는 사람입니다. 갈림없는 마음으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이웃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사람의 존재이유입니다. 율법교사는 물러나지 않고 예수님께 “누가 저의 이웃이 누구인지?” 묻습니다. 율법교사 덕분에 우리는 이웃 사랑의 진리를 새롭게 배웁니다.
여기서 주님의 그 유명한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가 나옵니다. 비유를 통해 주님은 우리의 무지를 일깨우고 이웃에 대한 사고를 완전히 바꾸십니다. “누가 나의 이웃인가?”에서 “나는 누구의 이웃이 되어야하는가?”로 관점의 변화입니다. 강도들을 만나 초주검이 된 사람을 놔두고 거룩한 성직자, 종교인을 지칭하는 사제도, 레위인도 ‘그를 보고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립니다. 복음의 묘사가 아주 실감납니다.
두 종교인의 위선은 바로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사마리아 사람의 반응은 달랐습니다. 그를 보고서는 피해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가엾은 마음에 온갖 사랑의 정성으로 최선의 처방을 다한 후 떠납니다. 참 사람됨의 시험에, 참사랑의 구원의 시험에 두 종교인은 불합격했고 합격자는 무시당하고 천대받던 이교도이자 이방인 착한 사마리아 사람 하나였습니다. 놀라운 발견이요 새로운 깨달음입니다. 과연 여러분의 반응은 어느 쪽이겠는지요? 그대로 우리의 부끄러운 내면을 환히 보여줍니다. 이어 예수님과 율법교사의 대화가 오늘 복음의 백미이자 절정입니다.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누가 내 이웃일까?’ 내 중심으로 물을 것이 아니라,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곤궁 중에 있는 자는 누구일까?’ 바로 그의 이웃이 되어주라는 말씀입니다.
바로 오늘 바오로 사도의 하나의 복음의 비밀을 알려 줍니다.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한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닐 것이라며 그가 전한 복음의 실상을 통쾌하게 해명하는 바오로 사도입니다.
“내가 전한 복음은 내가 어떤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고 배운 것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하여 받은 것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모범의 계시를 통해 영원한 생명의 참 복음을 배우는 우리들입니다. 이웃사랑을 통해 검증되는 하느님 사랑이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내적 하느님 사랑의 진정성을 확인합니다. 그대로 태양이신 하느님의 사랑을 반영하는 작은 태양 같은 착한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태양 빛 사랑에
눈부시게 빛나는 가을 작은 꽃송이들
하나하나가
작은 태양이구나!”<2008.10. >
착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세상 곳곳에서 하느님 사랑을 반영하는 빛나는 작은 태양 같은 <영원한 생명>의 사람들이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세상의 빛>입니다. 주님의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하느님 태양을 반사하는 작은 태양의 빛으로 살게 하십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