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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11.연중 제28주일(군인주일)  

 이사 25,6-10ㄱ 필리 4,12-14.19-20 마태 22,1-14

하늘나라의 축제인생

“꿈, 초대, 오늘”

“제 한평생 모든 날에, 

 은총과 자애만이 따르리니,

 저는 오래오래, 주님 집에 사오리다.”(시편23,6)

어제 <성 요셉의 배밭 친구들 후원회의 월례미사>가 있었습니다. 수도원 개원 39년 만에 초유의 역사적 사건입니다. 약 160여명이 참석했고 모두가 환히 웃는 얼굴들이 꽃처럼 예뻤습니다. 웃을 때는 모두가 꽃입니다. 아름다운 가을 날씨에 아름다운 수도원 경관을 바라보며 함께 점심식사를 나누던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여기가 하늘나라네요” 고백했습니다. 오늘 복음의 혼인잔치의 비유 첫 구절도 연상되었습니다.

“하늘나라는 자기 아들의 혼인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에 비길 수 있다.”

눈만 열리면 날마다 하늘나라의 축제 잔치 날입니다. 하루하루 축제인생을 살라고 선사되는 날들입니다. 그러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뿐인 인생, 고해인생 중에도 축제인생을 살아야합니다. 오래전 <하늘나라>란 자작시도 생각납니다.

“주님은 말씀하셨다

 ‘지나간 일을 생각하지 마라. 흘러간 일에 마음을 묶어두지 마라. 

 보아라. 이제 내가 새 일을 시작하였다(이사43,18-19ㄱ)‘

 그렇다 흘러간 것들에 마음 아파해 하지 말자

 아쉬워하지 말자

 쓸쓸해하지 말자

 흘러간 물이 다시 돌아오지 않듯

 흘러간 사람은, 사랑은,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사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오늘이고 

 설레는 마음으로 내일을 기다리는 것이다

 오늘 여기서 하늘나라를 사는 거다

 만나는 사람에, 사랑에 충실한 게 제일이다

 이게 영원한 현재를, 젊음을 사는 유일한 길이다

 흐르고 흘러도  

 늘 새롭게 만나는 주님이 우리의 기쁨이요 행복이다”<2005.10. >

하늘나라는 예수님의 평생화두였고 예수님 자체가 하늘나라 꿈의 실현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닮아 하늘나라의 꿈을 사는 것이 우리 삶의 유일한 존재이유입니다. 어떻게? 바로 우리 모두에게 하늘나라 꿈을 살라고 주어진 삶의 숙제입니다. 바로 오늘 말씀이 답을 줍니다. 

첫째, 하늘나라의 꿈과 희망, 비전을 늘 생생히 지니고 사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꿈중의 꿈이, 희망중의 희망이, 비전중의 비전이 하늘나라입니다. 하늘나라 꿈이, 희망이, 비전이 우리를 고결한, 탈속의 인품으로 살게 해줍니다. 참으로 이런 하늘나라의 꿈이 생생할 때 타락하지 않습니다. 유혹에 빠지지 않고 하느님의 자녀답게 빛나는 삶을 삽니다. 죽어있으면 꿈도 못 꿉니다. 살아있다 하여 다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 꿈을 지녀야 비로소 살아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물론이고 예수님이 흠모했던 이사야 역시 하늘나라 꿈, 희망의 예언자였습니다. 바로 오늘 제1독서 다음 말씀이 입증합니다.

“만군의 주님께서는 이 산 위에서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살진 음식과 잘 익은 술로 잔치를, 

 잘 익고 잘 거른 술로 잔치를 베푸시리라. 

 그분께서는 이 산 위에서 모든 겨레들과 모든 민족들에게 씌워진 너울과 

 모든 민족들에게 덮인 덮개를 없애시리라

 그분께서는 죽음을 영원히 없애 버리시리라

 주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 내시고

 당신 백성의 수치를 온 세상에서 치워주시리라.”

이사야의 원대한 하늘나라의 꿈이, 희망이, 비전이 참 놀랍고 아름답습니다. 놀라운 것은 모든 겨레, 모든 민족들이 구원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만민의 구원 희망을 밝혀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범인류적인 예언자, 이런 꿈과 희망, 비전을 앞당겨, 고해인생 중에도 오늘 지금 여기서 하늘나라의 축제인생을 살았던 이사야 예언자는 우리 삶의 영원한 롤 모델입니다. 이런 하늘나라의 꿈을 잃어버려 죄도 많고 병도 많은 세상에 너무 왜소해진 속화된 사람들이요 곳곳에 괴물같은 사람들에 폐인이 된 사람들 즐비합니다.

둘째, 우리 모두 하늘나라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입니다.

복음의 세상 욕심에 눈먼 사람들은 하늘나라 잔치에 초대를 거절했습니다. 그 절호의 구원의 기회를 잃었습니다. 누구 탓도 아닌 탐욕의 무지로 자초한 일입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구원 잔치에 초대한 주님의 심부름꾼인 종들을 붙잡아 때리고 죽입니다. 그대로 교회 역사상 무죄한 순교자들이 이를 상징합니다.

“혼인잔치는 준비되었는데 초대받은 자들은 마땅하지 않구나.”

흡사 오늘날도 유효한 그대로 주님의 탄식처럼 들립니다. 주님으로 상징되는 임금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잔칫방을 가득 채웁니다. 모두에게 열린 구원의 축제인생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초대받아 구원의 잔치에 참석했다 하여 구원이 아닙니다. 바로 혼인예복을 입었어야했습니다. 유비무환입니다. 하늘나라 꿈을 지니고 늘 준비된 삶을 살았다면 이런 불상사는 없었을 것입니다. 혼인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쫓겨났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사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

세례 받았다하여 구원이 보장된 것이 아닙니다.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구원의 선택입니다. 미리 앞당겨 구원의 미사잔치에 참석한 여러분들입니다. 혼인예복이 상징하는 그리스도의 옷을 입었습니까? 평소 주님을 닮은 수행생활에 충실했는가 묻습니다. 죽음 후 구원의 잔치에 앞서 날마다 미사잔치에서 초대받은 손님답게 충실한 일상의 삶을 살았을 때, 이사야서의 구원받은 사람들처럼 이 거룩한 미사잔치에서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보라, 이분은 우리의 하느님이시다. 우리는 이분께 희망을 걸었고, 이분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 이분이야말로 우리가 희망을 걸었던 주님이시다. 이분의 구원으로 우리 기뻐하고 즐거워하자. 주님의 손이 이 산 위에 머무르신다.”

흡사 <이 산>이 상징하는 바, 구원의 미사잔치가 거행되는 어디에서나의 성전입니다. 그러니 미사 때 마다 구원의 예복을 입고 이렇게 고백하라는 주님의 은혜로운 가르침입니다.

셋째, 하늘나라는 과거도 언젠가 미래도 아닌 바로 오늘 지금 여기 내 삶의 자리에서 살아내야 합니다. 제 <행복기도>중 한 대목도 이런 깨달음의 고백입니다.

“주님, 눈이 열리니

 온통 당신의 선물이옵니다

 당신을 찾아 어디로 가겠나이까

 새삼 무엇을 청하겠나이까

 오늘 지금 여기가 꽃자리 하늘나라 천국이옵니다.”<2018.10.16.>

바로 고해인생 중에도 하늘나라의 축제인생을 살았던 사랑과 기쁨의 사도 바오로가 이런 삶의 롤 모델입니다. 아침에 읽은 현자 다산의 “아이는 세상에 나와 말을 익히고, 노인은 세상을 겪으며 침묵을 배운다.”는 말씀도 <침묵>의 필요성을 일깨웁니다. 필립비 4장의 말씀이 참 은혜롭습니다. 주님의, 바오로의 진실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담아 그대로 전해 드립니다.

“내가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형제자매여러분, 나의 기쁨이며 화관인 여러분, 주님 안에서 굳건히 서 있으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 나는 어떠한 처지에서도 만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나는 비천하게 살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배고프거나 넉넉하거나 모자라거나 그 어떠한 경우에도 잘 지내는 비결을 알고 있습니다.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이보다 더 좋은 구원의 혼인예복도 없습니다. 참으로 우리를 <부끄럽게, 분발하게>하는 복음 말씀입니다. 환경에 지배되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지배하는, 존재가 의식을 결정하는 참으로 자유로운 삶입니다. 이래야 어디에서나 하늘나라 축제인생입니다. 바오로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평생과제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언제 어디서나 우리 모두 하늘나라 축제인생을 살도록 도와 주십니다. 바오로 사도를 통해 주시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나의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영광스럽게 베푸시는 당신의 그 풍요로움으로, 여러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하느님 아버지께 영원무궁토록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필리4,19-20).”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