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독서: 에페 1,1-10 <하느님께서는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복음: 루카 11,47-54 <아벨의 피부터 즈카르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예언자들의 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제목: 사라진 열흘과 참된 우정
1. 사라진 날들
1582년 10월 4일 밤, 예수의 데레사 성녀가 조용히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온 세상의 달력은 10월 5일이 아니라 10월 15일로 훌쩍 넘어갔습니다. 절기와 계절이 맞지 않는 문제를 바로잡으려고 교황 그레고리오 13세가 달력을 개혁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열흘이 사라진 일은 시간의 질서를 바로 세우려는 교회의 역사적인 결단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일로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의 달력이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까지 예수 부활 대축일을 한 날에 함께 지내지 못하는 깊은 분열의 아픔이 남았습니다. 아무리 좋은 뜻으로 시작한 일이라도 인간의 생각과 계산에만 매달리면 서로에게 상처가 되고 갈라지는 벽이 되기 쉽습니다.
2. 닫힌 지식의 문
이처럼 옳은 것을 따진다는 명분이 도리어 사람 사이를 가로막는 모습은 오늘 복음의 율법 교사들에게서도 똑같이 나타납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가장 많이 안다고 자부하면서도, 정작 사랑이라는 본래의 뜻은 잃어버렸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을 향해 엄하게 말씀하십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율법 교사들아!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서,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루카 11,52). 본래 지식은 하느님 나라의 문을 열어 주고 이웃을 사랑으로 이끄는 도구여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그 지식으로 높은 벽을 쌓고 다른 이를 밀어낼 때 신앙은 길을 잃고 맙니다.
3. 그리스도 안의 선택
신앙의 본질은 복잡한 규정이나 머리로 따지는 지식에 있지 않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에페 1,4)라고 선포합니다. 구원은 사람이 이론이나 규칙으로 애써서 얻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이 시작되기도 전에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베풀어 주신 은총의 초대입니다. 우리가 그 사랑에 마음을 열고 순명할 때 구원의 신비가 삶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참된 축복과 구원의 길은 겉치레 규칙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마음을 잇는 깊은 만남 안에서 열립니다.
4. 참된 우정의 기쁨
이러한 주님과의 만남을 평생 살아낸 분이 바로 달력이 바뀌던 날 선종한 예수의 데레사 성녀입니다. 성녀는 하느님을 만나는 길을 멀고 어려운 교리에서 찾지 않았습니다. 기도는 복잡한 지식이 아니라, 나를 극진히 사랑하시는 하느님과 단둘이 마주 앉아 나누는 ‘친밀한 우정’이라고 가르쳤습니다. 마음을 나누는 따뜻한 대화로 시작하여 깊은 고요와 완전한 일치로 나아가는 모든 과정은 언제나 하느님과 함께 머무는 여정이었습니다. 그 길은 결코 무겁거나 침울한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성녀는 “슬픈 성인은 안타까운 성인이다”라는 말을 남기며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누리는 참된 기쁨을 알려 주었습니다. 닫힌 문을 여는 참된 지식의 열쇠는 바로 주님과 나누는 이 우정 속에 있습니다.
5. 내면의 회심과 참된 일치
과거의 성인을 기억하고 무덤을 정성스레 단장하는 일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이 보여 준 복음의 삶을 오늘 내 현실에서 살아내는 일에는 분명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나이가 들고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사람은 자기 기준에 갇혀 이웃을 쉽게 판단하고 단죄하기 쉽습니다. 내가 가진 지식과 고집이 하느님께 나아가는 문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늘 마음을 살펴야 합니다. 바리사이들은 굳어버린 자기 의로움에 갇혀 진리의 말씀을 배척하고 끝내 모진 마음을 품었습니다. 우리는 그 어리석은 길을 따라가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 앞에서 나의 부족함을 겸손하게 인정하고 주님께 돌아서는 참된 회개가 필요합니다. 주님께서 주신 경험과 지식을 이웃을 품고 하느님 나라로 이끄는 사랑의 도구로 써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