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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전교주일)

1독서: 이사 2,1-5 <모든 민족들이 주님의 산으로 밀려들리라.>

2독서: 로마 10,9-18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파견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복음: 마태 28,16-20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라.>

제목: 삶의 자리로 파견되는 은총

1. 산으로 오르는 전례의 신비

1926년 교황 비오 11세가 제정한 이래 교회는 해마다 시월 마지막 전 주일을 전교 주일로 지내며, 온 세상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기억하고 기도와 나눔으로 일치합니다.

이 거룩한 날을 맞아 구약의 이사야 예언자는 온 세상 백성이 하느님의 집으로 모여드는 모습을 이렇게 들려줍니다. “자, 주님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의 하느님 집으로! 그러면 그분께서 당신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시어 우리가 그분의 길을 걷게 되리라.”(이사 2,3)

예언자의 외침처럼 우리 역시 한 주간 세상살이의 고단함을 안고 거룩한 제단 앞으로 모여듭니다. 여기서 주님의 말씀을 귀담아듣고 거룩한 성체를 모십니다. 이 자리는 지난 일을 그저 떠올리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를 위해 목숨 바치신 예수님의 구원을 지금 여기서 누리게 해 줍니다. 이렇게 제단에서 하느님의 은총을 듬뿍 받은 우리는, “주님의 빛 속에 걸어가자!”(이사 2,5)라는 말씀에 힘입어 다시 세상 한가운데로 걸어 나갈 용기를 얻습니다.

2. 들음에서 번져가는 거룩한 사명

성당에서 은총의 힘을 얻은 우리는 이제 각자의 삶의 자리로 파견됩니다. 사도 바오로는 구원이 우리 삶에 어떻게 뿌리내리는지 명쾌하게 밝힙니다. “파견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로마 10,15)

주님께 파견받은 이가 복음을 선포할 때 세상이 그 소리를 듣고, 그 들음에서 비로소 참된 믿음이 싹터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그렇기에 성경은 기쁜 마음으로 찬탄합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로마 10,15; 이사 52,7)

이 아름다운 발걸음은 결코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본당 구석구석을 돌보며 궂은일에 기꺼이 손을 보태는 교우들의 걸음, 수도 공동체 안에서 이름 없이 바치는 묵묵한 기도와 형제자매를 위한 헌신의 손길과 맞닿아 있습니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아도 공동체의 일치와 이웃을 위해 정성을 다하는 그 겸손한 섬김이야말로 살아 숨 쉬는 복음의 통로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공동체의 이 일상적인 자리를 바로 이러한 구원의 소리를 전하는 거룩한 통로로 부르십니다.

3. 세상 끝까지 이어지는 영원한 동행

이렇게 일상의 자리로 파견되는 우리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교회의 가장 위대한 사명을 맡기십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19-20)

이 말씀은 한 번의 세례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가르침을 일상에서 실천하도록 평생 서로를 돌보고 이끌어 주라는 뜻입니다. 그렇기에 교황 프란치스코께서 강조하셨듯이 우리는 안락한 울타리에 안주하지 않고 삶의 무게로 짓눌린 실존적 변두리로 나아가는 ‘선교사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미사 끝에 사제가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라고 선포할 때, 그것은 미사가 끝났다는 단순한 작별 인사가 아닙니다. 은총으로 채워진 우리의 삶 속에서 참된 선교가 바로 지금부터 시작된다는 파견의 외침입니다.

마태오 복음서 첫 장의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마태 1,23)라는 약속은, 복음서 마지막의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라는 선언으로 든든하게 완성됩니다.

언제나 우리 곁에 계시는 주님을 굳게 믿으며, 각자의 일터와 공동체 안에서 사랑과 인내로 복음의 빛을 묵묵히 증언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