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2,1-5 로마10,9-18 마태28,16-20
복음 선포의 사명과 삶
“꿈의 실현, 명령의 수행, 구원의 절박성”
“주님께서 민족들의 눈앞에
당신의 구원을 알리셨다
당신의 정의를 드러내 보이셨다”(시편98.2)
오늘은 연중 제29주일이자 전교주일로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해 미사를 봉헌합니다. 또 오늘은 루카사도 축일이지만 주일로 인해 축일미사는 봉헌하지 않습니다. 지난 저녁식사 때는 오늘 영명축일을 맞는 김 루카 수사를 위한 조촐한 축하식도 있었습니다. 선교의 모범, 루카 사도입니다. 모든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사도들을 통해 새삼 선교는 교회의 존재이유이자 본질적 사명임을 깨닫습니다. 잠시 이런저런 나눔으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올해 노벨상 수상자들의 첫날이란 칼럼에 나온 내용 일부입니다.
“인생의 화양연화(花樣年華;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로 기록될 하루, 누군가는 도시락을 싸고, 누군가는 시험감독을 했다. 천재가 쌓아 올린 높고 아름다운 탑을 떠받치는 건, 낮고 단단한 일상인가보다.”
<낮고 단단한 일상>을 살아내는 삶 자체가 참 좋은 복음 선포의 삶입니다.
통일부 장관의 인터뷰 기사 말미의 내용도 참 좋은 묵상감입니다.
“가을색이 들기 시작하고 있다. <세상은 총천연색>이다. 그러나 아직도 세상을 빨간색이나 파란색으로 보는 사람들이 특히 정치권에 많다. 색맹의 정치를 벗어나야한다.”
복음 선포의 삶에도 편견의 색맹에서 벗어나 본질 직시의 <맑고 밝은 온전한 시선>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삶을 꿰뚫어 보는 섬 할머니들 말씀을 옮기니 시가 되었죠.”라는 강 제윤 시인의 다음 고백도 <시적(詩的) 인간> 존재임이 드러납니다.
“제주 동문시장 45년 어물전 좌판 할머니는 이렇게 말합니다. ‘첫 숟가락에 배부를까. 방죽을 파놔야 머구리가 뛰어들지, 그물코도 삼천코면 걸릴 날이 있다고 차분히 맘먹고 사시오.’ 조급하게 살지 말라는 건데요. 기가 막힌 말씀이잖아요. 한마디가 너무 시적(詩的)이죠. <여자들은 철 들면 시집가는데 남자들은 철 들면 죽는다>는 한 할머니의 말도 기억에 남아요.”
이래서 복음 선포시 아름다운 시적(詩的) 강론도 참 좋겠습니다. “쉽다, 깊다, 아름답다, 울림이 있다” 같은 평가의 <시적인 삶에 강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래서 요즘 강론 시 반드시 인용하는 자작시들입니다.
오래전 두 편의 짧은 자작시입니다.
“햇빛 달빛 별빛
온 누리에 충만한 빛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의 빛”<빛; 1998.10.4.>
이래서 평화의 복음을 선포하면서 “빛 속에, 평화의 빛, 사랑의 빛 속에 걸어가자” 초대하는 이사야 예언자입니다.
“그분께서 민족들의 재판관이 심판관이 되시리라. 그러면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거슬러 칼을 쳐들지도 않고,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도 않으리라. 야곱 집안아, 자, 주님의 빛 속에 걸어가자.”
또 한편의 시입니다.
“삶에서 피어난 꽃같은 말
삶에서 맺은 열매같은 말
생명을 주는 진실하고 아름다운 말”<말;1998.10.8.>
참으로 복음선포에 <적절한 말>입니다. 오늘 제100차 전교주일을 맞아 레오 14세 교황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되어, 선교 사명으로 일치하여”라는 제목의 담화에서 다음처럼 권고합니다.
“일치가 선교 사명의 조건이라면, 사랑은 선교 사명의 본질이다. 우리가 세상에 파견돼 선포하는 기쁜 소식은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과 삶으로 육화된, 하느님의 신실한 사랑에 대한 복음이다. 그리스도 안에 살아가는 우리 삶의 증거를 통해, 기도를 통해, 선교사들을 위한 기부를 통해, 복음화 사명에 동참하자.”
어떻게? 복음 선포의 삶, 복음화 사명에 충실할 수 있을까요. 세 측면에 걸쳐 나눕니다.
첫째, 복음 선포의 꿈을 생생히 지니고 배움의 여정에 충실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하느님의 꿈, 하늘나라의 꿈입니다. 이사야 예언자가 그 모범입니다. 꿈의 앞날을 내다보며 꿈을 실현하며 앞당겨 살도록 우리 모두에게 용기백배 힘을 주는 이사야입니다.
“자, 주님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의 하느님 집으로! 그러면 그분께서 당신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시어, 우리가 그분의 길을 걷게 되리라. 이는 시온에서 가르침이 나오고,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말씀이 나오기 때문이다.”
시온이, 예루살렘이 상징하는 바 교회입니다. 하늘나라 꿈의 실현에 교회를 통한 말씀의 배움과 공부는 필수입니다.
둘째, 복음 선포는 주님의 명령이자 우리의 사명임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친히 제자들에게 명령하십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모든 세대에게, 오늘의 우리에게 주시는 명령이 아주 짧으며 단호합니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겠다.”
복음 선포에 앞서 우리의 신원확립이 우선입니다. 과연 주님의 가르침을 충실히 지키며 복음 선포에 충실한 삶이었는지요! 이런 좋은 삶을 보고 배우는 것보다 더 좋은 복음 선포의 삶도 없습니다. 무엇보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은 주님께서 세상 끝 날까지 영원한 평생 도반이 우리와 함께 있겠다는 약속이 참으로 든든한 위로와 힘이 됩니다.
셋째. 복음 선포를 통한 구원의 절박성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를 통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유다인과 그리스인 사이에 차별이 없습니다. 같은 주님께서 모든 사람의 주님으로서, 당신을 받들어 부르는 모든 이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푸십니다.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습니다.”
믿어야 부를 수 있고, 들어야 믿을 수 있고, 선포하는 사람이 있어야 들을 수 있으며, 파견되어야 선포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구원을 위한 복음 선포가 우선입니다. 그러니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말씀-들음-믿음이 하나로 이어져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며 믿음을 돈독히 하는 삶 자체가 복음선포요 복음선포의 참 좋은 전제조건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를 치유하시며 우리 모두 복음 선포의 삶에 항구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우리 하느님의 구원을
세상 끝들이 모두 보았다
주님께 환성을 올려라, 온 세상아”(시편98,3ㄷㄹ-4ㄱ).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