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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21.연중 제29주간 수요일

에페3,2-12 루카12,39-48

꺠어 준비하고 있어라

“나는 과연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인가?”

“보라, 하느님은 나의 구원.

 신뢰하기에 나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주님은 나의 힘, 나의 굳셈, 나에게 구원이 되어 주셨다.”(이사12,2)

레오 14세 교황의 폐암의 수술을 끝까지 지켜본 파롤린 추기경의 말마디가 생생각납니다.

“그분은 위대한 평온의 모범이시다!”

(He is an example of great serenity!)

위대한 평온이 상징하는 바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들의 종, 교황의 면모입니다. 

옛 현자의 말씀입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귀를 기울여 들어라. 말의 맨 청자는 화자 자신이다.”<다산>

“옛 사람은 말을 함부로 하지 않았는데, 이는 행동이 따르지 못할 것을 부끄러워했기 때문이다.”<논어>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것이 잘 듣는 것입니다. 베네딕도 규칙의 첫마디도 “들어라, 아들아!”입니다. 어제 <깨어 있어라>에 <깨어 들어라>추가하고 싶습니다. 오늘 복음은 <깨어 있어라>에 <깨어 준비하고 있어라>, 준비하고가 추가되고 있습니다. 막연한 깨어 있음이 아니라 깨어 잘 들으며 준비하는 삶이어야 함을 배웁니다. 

오늘 복음은 주로 공동체의 책임자들을 향합니다만 나름대로 크고 작은 책임을 진 모두에게 해당된다 할 수 있습니다. 유비무환입니다. 깨어 준비하며 책임을 다하는 삶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막연한 믿음이, 사랑이 아니라 책임을 다하는 믿음이, 사랑이 진짜 믿음, 진짜 사랑입니다. 옛 자작시 두 편도 자연의 소재에서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오! 자랑스러워라

 붉은 호박들

 밭둑에 경사났네

 꼭 태양 덩어리 같은 붉은 호박들!

 기쁨으로 출렁이는 여름 오후”<호박; 2000.7.20.>

정말 부여된 책임을 다해 둥글고 크게 잘 익은 탐스런 호박들이 참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웠던 기억이 새롭게 떠오릅니다.

“원숙한 인격의 향기는

 봄꽃 향기 아닌 가을 과일 향기와 같아

 푸근하고 아늑하다”<과일향기; 2000.9.18.>

깨어 책임을 다한 충실하고 슬기로운 주님 종들이 바로 이러할 것입니다. 요즘 배밭사이 산책길의 느낌이 남다릅니다. 탐스럽게 주렁주렁 달렸던 배열매들의 수확이 끝난 분위기는 <텅 빈 허무>가 아닌 <텅 빈 충만>의 기쁨과 행복의 분위기입니다. 

수확이 끝난 가을 인생 노년도 이와 같이 텅 빈 충만의 상태라면 얼마다 흐뭇하겠는지요! 오늘 복음의 주님 말씀이 당대의 제자들은 물론 오늘 우리에게도 신선한 가르침이자 깨우침이 됩니다.

“주인이 자기 집 종들을 맡겨 제때에 정해진 양식을 내주게 할 충실하고 슬기로운 집사는 어떻게 하는 사람이겠느냐?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주인이 상징하는 바 주님입니다. 반면 이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주인이 늦게 온다 싶어 방심하고 하인들을 때리고 먹고 마시며 술에 취하기 시작한 불충실한 종들입니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을 떼 엄중한 추궁과 심판이 따를 것입니다. 결론같은 말씀입니다.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

맡겨진 책임을 다하는 믿음이, 사랑이 얼마나 결정적으로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참으로 깨어 주님의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으로 살아감이 너무 중요합니다. 지식보다는 지식을 분별할 수 있는 슬기요 <지혜의 눈>입니다. 활짝 깨어 열린 마음으로 편견 없이 잘 듣고 잘 보며 분별의 지혜를 발휘하며 최선을 다하는 종이 참으로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입니다. 

주님께 맡겨진 종들을 책임진 충실하고 슬기로운 집사 역시 주님의 종입니다. 그래서 교황은 <종들의 종>이라 칭하곤 합니다. 넓고 깊이 보면 모두가 주님의 종입니다. 이런 종의 권한은 “특권(privilege)”이 아니라, “시험(test)”이자 “신뢰(trust)”임을 깨닫게 됩니다. 모든 순간의 결정이 일종의 시험이요 책임을 다하는 신뢰의 계기가 됩니다.

바로 이런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의 롤모델이 오늘 제1독서 에페소서 주인공 사도 바오로입니다. 오늘 에페소서 주제는 <이민족들을 위한 바오로의 사도직>입니다. 주님께 부여된 사도직의 책임을 훌륭히 수행한 주님의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 바오로의 모습은 주님께 얼마나 자랑스럽고 대견했겠는지요! 바오로의 확신에 넘친 고백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힘을 펼치시어 나에게 주신 은총의 선물에 따라, 나는 복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모든 성도들 가운데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나에게 그러한 은총을 주이서 그리스도의 헤아릴 수 없는 풍요를 다른 민족들에게 전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확신을 가지고 하느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참으로 깨어 주님의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으로 부여 받은 사명과 책임을 다할 때 그리스도 안에서 확신을 가지고 하느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날마다 주님의 <구원의 샘> 거룩한 미사 은총이 우리 모두 주님의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으로 살게 하십니다.

“너희는 기뻐하며

 구원의 샘에서 물을 길으리라.”(이사12,3).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