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독서: 에페 4,7-16 <머리이신 그리스도 덕분에 온몸이 자라나게 됩니다.>

복음: 루카 13,1-9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멸망할 것이다.>

제목: 기다림 안에서 자라는 몸

1. 멈추어 서서 나를 보는 시간

성전에서 제물을 바치다 피를 흘린 갈릴래아 사람들의 참사와 실로암 탑이 무너져 내린 비극을 두고, 사람들은 저마다 손가락질하며 남의 죄를 캤습니다. 세상은 큰 사고나 고통을 보면 누군가 죄를 지어 벌을 받은 것이라며 쉽게 남 탓을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런 매정한 생각을 분명하게 막으셨습니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멸망할 것이다”(루카 13,5). 남의 불행을 두고 흉보지 말고, 지금 내 삶부터 똑바로 돌아보라는 엄한 말씀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회개는 그저 마음으로 뉘우치고 끝나는 일이 아닙니다. 내 고집과 욕심을 버리고 삶의 방향을 하느님 쪽으로 돌려세우는 일입니다. 포도밭 주인은 삼 년 동안 열매를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를 보며 땅만 버린다고 잘라 버리라 명합니다. 그때 포도 재배인이 가로막아 서며 청합니다. “주인님, 이 나무를 올해만 그냥 두시지요. 그동안에 제가 그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겠습니다”(루카 13,8). 이 간청은 벼랑 끝에 선 우리를 위해 빌어 주시는 그리스도의 너른 자비를 잘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 기다림은 게으르게 머물라고 주신 시간이 아닙니다. 흙을 파고 거름을 주는 이 마지막 기회의 때에, 우리는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2. 사랑으로 서로를 채우는 직무

성 베네딕도는 수도 생활을 하느님께 돌아가기 위한 끊임없는 회개의 여정이라고 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오늘 하루를 더 살게 해 주신 까닭은, 잘못을 고치고 참된 사랑의 열매를 맺으라는 뜻입니다. 옛 사막의 스승들도 말만 앞세우고 실천이 없는 삶은 잎만 무성하고 열매 없는 나무와 같다고 꾸짖었습니다. 겉으로만 그럴듯한 신앙을 벗어 던지고, 겸손과 사랑을 생활 속에서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 열매는 결코 나 혼자 힘으로 맺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께서 나누어 주시는 은혜의 양에 따라, 우리는 저마다 은총을 받았습니다”(에페 4,7)라고 선언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어떤 이는 사도로, 어떤 이는 교사나 목자로 세워 주셨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맡은 일과 직분의 차이는 높고 낮음을 가르는 계급이나 특권이 아닙니다. 장상이나 소임을 맡은 자리는 남 위에 서는 권세가 아니라, 다른 이들을 북돋아 함께 봉사하도록 돕는 자리입니다. 교회는 차가운 행정 조직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한 몸입니다. 우리에게 서로 다른 재능을 주신 것은 제 자랑을 하라는 뜻이 아니라,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 그리스도의 몸을 튼튼하게 세우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서로 다름을 인정하며 돕고 살아갈 때, 공동체는 어떤 흔들림 속에서도 단단한 일치를 지켜낼 수 있습니다.

3. 한 식탁에서 완성되는 신비

우리가 맺어야 할 사랑의 일치는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서 흘러나옵니다. “그분 덕분에, 영양을 공급하는 각각의 관절로 온몸이 잘 결합되고 연결됩니다”(에페 4,16). 이 결합이 가장 거룩하게 이루어지는 자리가 바로 성체성사입니다. 우리는 미사 안에서 하나의 빵과 하나의 잔을 함께 나누며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자라납니다. 서로 다른 처지와 형편을 지닌 이들이 제대 앞에서 그리스도의 한 몸으로 굳건하게 묶입니다.

성체성사는 지친 우리 몸의 관절마다 사랑으로 자라날 수 있는 힘을 불어넣어 줍니다. 주님께서 내 삶의 둘레를 파고 거름을 주시며 기다려 주신 것처럼, 이제는 우리가 형제의 모자란 구석을 품어 안고 서로를 북돋아 주어야 합니다. 주어지는 은총의 때를 헛되이 보내지 말고,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향해 온몸이 사랑 안에서 무럭무럭 자라나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