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10.23.연중 제29주간 금요일

에페4,1-6 루카12,54-59

때를 아는 지혜

“깨달음의 지혜가 참으로 자유롭게 한다”

“주님, 당신 눈동자처럼 저를 보호하소서

 당신 날개 그늘에 저를 숨겨 주소서.”(시편17,8)

지식의 범람, 지식의 홍수시대입니다. 정작 필요한 것은 지식보다는 삶의 지혜입니다. 옛 구도자들이 사막의 스승을 찾아 나섰던 까닭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에 대한 삶의 지혜를, 삷의 답을 찾아서였습니다. 지식은 지식들의 노예로 만들지만 지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지혜의 눈>이 없는 지식들만이라면 쓰레기 더미에 불과할 뿐입니다. 삶의 스승들에게 배워야 할 바 삶의 지혜입니다. 제 어머님을 비롯하여 많은 옛 어머니들은 지식은 짧았지만 참으로 지혜로웠고 모두가 사랑에서 나온 지혜였습니다. 옛 현자의 말씀이 참 지혜롭습니다.

“말이 많아지면 어느새 쌓인 말들이 행동을 앞서게 된다.”<다산>

“말이 많아지면 빨리 궁해지니 차라리 속을 비워 지키느니만 못하다.”<도덕경>

지혜롭지못해 날로 천박淺薄하고 바빠지고 복잡해지는 삶입니다. 지옥에는 한계가 없다 합니다. 한계가 없는 끝없는 일 욕심이, 돈 욕심이 참으로 우리를 노예적 지옥의 삶으로 만드니. 무지로 인해 스스로 자초한 불행입니다. 

많이 가져서 부자가 아니라 필요한 것이 적을수록, 최소한도의 필요로도 자유롭고 행복하게 사는 자들이 정작 부자입니다. 내적으로 궁할수록 더 많은 소유를 필요로 합니다. 눈만 열리면 모두가 지혜의 스승들입니다. 오래전 두 편의 자작시가 눈에 띕니다.

“꼭 비가 와야 맑은 시냇물인가

 가뭄 중에도 

 늘 맑게 흐르는 시냇물일수는 없나

 늘 깊고 푸른 산 

 흐르는 맑은 시냇물로 살 수는 없나

 생명으로 촉촉이 적시며 

 임 바다 향해 흐르는 

 맑은 시냇물로 살 수는 없나”<맑은 시냇물; 1998.9.21.>

“당신 향한 그리움

 하늘이, 산이, 푸른 솔이 되었습니다

 당신 그리울 때 마다

 바라보는 하늘, 산, 푸른 솔입니다

 나 이렇게 살아갑니다”<삶; 1998.9.23.>

무욕의 지혜입니다. 깨달음의 여정이, 깨달음의 지혜가 날로 자유롭고 행복하게 합니다. 마지막 하느님 한 분 만으로 만족해합니다. 옛 구도자들은 바로 이런 하느님을 만나려 사막을 찾았습니다. 

바로 이런 지혜를 지닌 분이 복음의 에수님이요 제1독서 에페소서 저자인 바오로 사도입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의 무지한 세대를 향한, <시대를 알아보아라>, <늦기 전에 화해하라>는 주님의 질타입니다.

“워선자들아.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

이 시대의 징조를 알아보는 지혜의 눈이 지금처럼 절박할 때는 없었습니다. 개인주의, 소비주의, 금전만능주의등 날로 악화되고 파괴되는 자연과 공동체입니다. 쓰레기 치우는 것을 담당하는 수도형제에게 물었더니 <날마다> 쓰레기를 치운다 했습니다. 무수한 쓰레기를 배출하며 살아가는 오염과 공해의 사람들입니다. 

예전 <무공해無公害> 산소같은, 나무같은 수도자라는 말에 내심 흡족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무지로 인해 남발하는 소송들은 얼마나 많습니까? 회개가 지혜입니다. 모든 것은 때가 있습니다. 신속한 회개와 화해의 사람이 참으로 깊고 넓은 내적시야를 지닌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오늘의 우리를 향해 거듭된 주님의 말씀입니다.

“너희는 왜 올바른 일으르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느냐?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재판관에게 갈 때, 도중에 그와 합의를 보도록 힘써라.”

모든 덕의 어머니가 분별력의 지혜입니다. 늦기 전에 분별력의 지혜를 발휘하여 <회개하고 화해하라>는 주님의 충고입니다. 깨달음의 대가, 분별력의 지혜의 대가가 바로 사도 바오로입니다. 

감옥이 갇힌 주님 안에서 수인인 바오로 사도가 역설적으로 자유를 누립니다. 명실공히 내적 대자유의 사람, 바오로 사도입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금과옥조의 지혜입니다.

“여러분이 받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겸손과 온유를 다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사랑으로 서로 참아 주며,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애쓰십시오.”

이어지는 바오로의 통쾌한 말씀에서, 하나에 대한 깊고 깊은 깨달음이 바오로 사도를 참으로 대자유의 지혜의 사람으로 만들었음을 봅니다. 그대로 우리의 깨달음으로 만들었으면 하는 청정욕에 공부하는 마음으로 전문을 통째로 인용합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실 때에 하나의 희망을 주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고, 성령도 한 분이시고,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이고, 만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만물을 통하여, 만물 안에> 계십니다.”

이런 하나에 대한 <깨달음의 은총>이 주님을 닮아 바오로 사도뿐 아니라 우리 모두 단순소박한 무욕의 지혜, 분별력의 지혜를 지닌 대자유인으로 만들어 줌을 봅니다. 바로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누가 주님의 산에 오를 수 있으랴? 

 누가 그 거룩한 곳에 설 수 있으랴?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결백한 이, 

 헛된 것에 정신을 팔지 않는 이라네.”(시편24,3-4ㄱㄴ).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