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10.24.연중 제29주간 토요일

에페4,7-16 루카13,1-9

회개하여라

“무지에 대한 답은 회개뿐이다”

“주님의 집에 가자 할 제,

 나는 몹기 기뻤노라.“(시편122,1)

제가 800km 2000리 산티아고 순례여정시 늘 불렀던 시편이 바로 오늘 이 화답송 후렴입니다.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세례자 요한의 유다 광야에서의 첫 선포이자 예수님의 갈릴래아 전도시 첫 선포로 동일합니다. 예나 이제나 믿는 이들의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임박한 하늘나라 맞이에 회개보다 더 적절한 응답은 없습니다. 믿는 이들의 첫 출발점이 메타노니아 회개입니다. 제 집무실 명칭도 <메타노이아>입니다. 

바로 “회개하여라” 말마디를 평생화두로 삼아야 함을 깨닫습니다. 무지에 대한 답도 참된 회개뿐입니다. 회개와 더불어 겸손입니다. 참사람이 되는 길도 끊임없는 회개를 통한 겸손뿐입니다. 자기를 아는 겸손이 바로 지혜입니다. 이런 회개의 여정을 통해 무지의 병은 치유되어 비로소 무지의 어둠에서 벗어납니다. 지체할 수 없는,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회개요 하늘나라를 사는 것입니다. 

요즘 목치료를 받으며 깨어 자세 바로 잡기에, 바른 자세에 각별한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깨어있는 삶 역시 구체적 회개의 표현입니다. 늘 깨어 바른 자세를 위해 노력해야 함을, 특히 <식사할 때, 기도할 때>, 깨어 바른 자세를 견지堅持해야겠다는 각오를 새로이 합니다. 회개와 더불어 <늘 새로운 시작>의 자유로운 삶입니다. 옛 자작시 두 편도 이런 바램의 표현입니다.

“아름다운 꽃처럼

 자유로운 새처럼

 노래하는 시냇물처럼

 살 수는 없을까

 시처럼, 노래처럼, 그림처럼, 춤처럼

 멋있고, 맛있게

 사랑과 자유를 누리며 살 수는 없을까

 한 번 뿐이 없는 삶인데”<자유인; 1998.12.4.>

“내 바램 있다면 

 하나,

 ‘하루하루 

  내 마음 하늘 되어

  떠오르는 황홀한 사랑 

  태양 가슴 가득 안고 살아가는 것‘

 뿐이다”<내 바램 하나; 1998.12.9.>

그러나 반드시 명심할 바 <홀로와 더불어> 삶의 균형과 조화입니다. 홀로와 더불어의 공동체적 회개를 늘 명심해야 합니다. 공동체적 <회개의 생활화>를 위한 공동전례은총이 참 고맙습니다. 회개의 수행 역시 <선택-훈련-습관>의 도식에 해당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오늘 말씀의 이해도 확연해 집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한다”

바로 오늘 복음의 주제입니다. 빌라도가 갈릴래아 사람들을 죽여 제물을 피로 물들이게 한 불행이, 실로암에 있던 탑이 무너지면서 깔려 죽은 열여덟 사람이  큰 죄인들이라서 그랬을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의 거듭된 단호한 말씀이 우리에게 경종이 됩니다.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멸망할 것이다.”

언젠가의 회개가 아니라 언제 죽을지 모르니 당장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의 비유>가 기막히게 적절합니다. 포도원 주인과 포도 재배인의 대화가 흡사 아버지와 아들 예수님의 대화처럼 들립니다. 포도원 주인이 각별한 배려로 삼년이나 기다렸는데 열매를 맺지 못하자 베어버리자는 주인에게 포도원 재배인의 일 년간 유예해 달라는 간청이 기도처럼 들립니다.

“주인님, 이 나무를 올해만 그냥 두시지요. 그동안 제가 그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겠습니다. 그러면 내년에는 열매를 맺겠지요. 그러지 않으면 잘라 버리십시오.”

회개하라 연장되는 날들입니다. 죽으면 회개도, 사랑도, 기도도, 공부도, 선행도 못합니다. 바로 이런 좋은 열매들 맺으며 살라고 연장되는 날들입니다. 과연 여러분의 내적 열매들은 어떤 상태입니까? 가을 인생이라면 잘 익어가는 원숙한 영적 열매들이어야 할 것입니다. 회개가 뜻하는바 <죄로부터의 자유>는 <주님 안에서 자유>를 지향합니다. 회개와 더불어 주님 사랑 안에서 자유로운 성장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공동체 안에서 이뤄지는 <회개의 완성>에 대한 바오로의 비전이 참 아름답고 깊습니다. 회개의 구체적 실천은 모두가 그리스도의 몸을 성장시키는 충실한 직무의 수행에서 입증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모두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과 지식에서 일치를 이루고 성숙한 사람이 되며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 다다르게 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우리는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고 모든 면에서 자라나 그분에까지 이르러야합니다. 그분은 머리이신 그리스도입니다.”

그대로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회개의 열매, 회개의 완성을 이뤄주느 미사은총입니다. 참으로 바람직한 <홀로와 더불어>의 삶 역시 우리의 머리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부단한 회개를 통해 이뤄집니다. 

“보라, 주님의 눈은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당신 자애를 바라는 이들에게 머무르신다.

 주님은 죽음에서 목숨을 건지시고, 

 굶주릴 때 먹여 살리신다.”(시편33,18-19).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