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22,20-6 1테살1,5ㄴ-10 마태22,34-40

사랑은 아무나 하나?

“사랑밖엔 길이, 답이 없다. 사랑도 배워야 한다”

오늘 복음, <가장 큰 계명>을 묵상하면서 퍼뜩 떠오른 말마디는 “사랑은 아무나 하나?”였습니다. 이어 떠오른 말마디는 “사랑밖엔 길이, 답이 없다. 사랑도 배워야 한다” 였고 오늘 강론 제목이기도 합니다.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일이, <참으로 사는 일>이 사랑이요 이밖에는 모두 부수적인 일입니다. 

사랑하기에도 턱없이 짧은 세상, 도대체 미워하며 시강낭비하기에는 너무 억울하고 아까운 세월입니다. 살아 있을 때 사랑이요, 죽으면 사랑도 못합니다. 사랑하라 연장되는 나날이요 하느님은 사랑으로 우리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어느 자매님이 남편의 마지막 선물같은 유언에 앙금이 완전히 사라지고 사후 남편을 더욱 그리워하며 사랑하게 됐다는 일화도 생각납니다. 

“1.미안하다.

 2.고맙다.

 3,사랑한다.”

주님 앞에 가서도 이 세 말마디면 다 용서받고 구원받을 것입니다. 오늘 옛 현자 <다산>의 말씀도 새롭습니다.

“말이 말을 하지 않고, 사람이 말하기 위해서는 오직 끊임없는 공부와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

무슨 공부, 무슨 깨달음입니까? 바로 사랑공부요 사랑에 대한 깨달음입니다. 배우고 공부해도 끝이 없는 평생공부가 사랑이요 인생 <사랑의 학교>에서는 졸업이 없습니다. 죽어야 졸업이요 사랑에는 영원한 초보자일 뿐입니다.

사제서품후 여기서 37년 동안 정주하면서 해왔던 많은 강론들과, 써왔던 많은 시들의 주제는 대부분 <사랑>입니다. 사랑 빼 놓으면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늘엔 별이 있고, 땅에는 꽃이 있고, 사람 마음 안에는 사랑이 있습니다. 사랑해서 비로서 사람입니다. 사랑하면 떠오르는, 참 많이도 나눴던 오래전 <행복기도>란 자작 기도시입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찬미합니다

 감사합니다

 기뻐합니다

 차고 넘치는 행복이옵니다 

 주님,

 눈이 열리니

 온통 당신 사랑의 선물이옵니다

 당신을 찾아 어디로 가겠나이까

 새삼 무엇을 청하겠나이까

 오늘 지금 여기가 꽃자리 하느님의 나라 천국이옵니다

 곳곳에서 발견하는

 기쁨, 평화, 감사, 행복이옵니다

 살 줄 몰라 불행이요 살 줄 알면 행복임을 깨닫나이다

 끊임없는 찬미와 감사의 기도와 삶 중에

 당신을 만나니

 당신은 우리를 위로하시고 치유하시며

 기쁨과 평화, 희망과 자유를 선사하시나이다

 주님, 

 당신은 저의 전부이옵니다

 저의 생명, 저의 사랑, 저의 희망, 저의 기쁨, 저의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와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당신과 함께 새롭게 시작하는 아름다운 하루이옵니다

 이제 당신을 닮아

 온유와 겸손, 인내의 사람이 되는 것이 제 소망이오니

 간절히 청하는 제 기도를 들어주소서

 당신께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2018.10.16.>

사랑밖엔 길이, 답이 없습니다. 만병통치약이 사랑이요, 만병의 근원이 사랑결핍입니다. 탓할바 사랑부족이요 청할 바 사랑의 능력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율법교사는 우리를 대신해서 영원한 스승이자 주님이신 예수님께 묻습니다.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지체 없는 통쾌한 답변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하느님 사랑이 먼저입니다. 하느님을 먼저 사랑하라고 어디서나 눈 들면 하늘입니다. 갈림없는 마음으로, 전 존재로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입니다. 인간이 물음이라면 하느님은 답입니다. 하느님 모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을 사랑할수록 하느님을 닮아 참사람이 됩니다. 그 참 좋은 롤모델이 예수님입니다. 

바로 이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당신을 삶의 중심에 모시고 살라고 거룩한 사랑의 성체성사 미사잔치에 초대해 주셨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고는 참사람이 되는 길은 요원합니다. 십중팔구 무지와 허무의 어둠속에 방황하며 헛되이 살다가 세상을 마칩니다. 이어지는 주님의 복음 말씀입니다.

“둘째는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사랑해야 한다.’ 사랑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의무입니다. 참으로 살기위해, 참사람이 되기 위한 필수 의무가 사랑입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은 구별될지언정 분리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선순위는 하느님 사랑이요 그 다음 이웃사랑입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하느님이 계십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면 그 사랑은 저절로 이웃사랑으로 표현됩니다. 그러니 하느님 사랑의 진위는 이웃사랑에서 검증됩니다. 전 성서의 요약이, 전 율법의 요약이 사랑의 이중계명입니다. 

이웃사랑은 추상명사가 아니라 구체적 실천동사입니다. 바로 가난하고 약한자들에 대한 구체적 이웃사랑의 실천입니다. 제1독서 탈출기는 그대로 약자보호법으로 약자들에 대한 사랑실천을 권합니다. 

“너희는 이방인을 억압하거나 학대해서는 안 된다.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이방인이었다. 너희는 어떤 과부나 고아도 억울러서는 안된다.”에 이어지는 구구절절 공감이 가는 약자보호법이요 마지막 말마디가 긴 여운을 남깁니다.

“나는 자비하다.”

주님의 자바하심을 본받아 이웃사랑의 실천에 항구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평생과제 역시 자비로운 사람이 되는 것임을 이미 알려주셨습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6,36)

사랑도 보고 배웁니다. 부모의 사랑, 스승의 사랑, 이웃 형제들의 사랑을 저절로 보고 배웁니다. 사랑 역시 <선택-훈련-습관>이 도식이 적용됩니다. 사랑을 보고 배우는 것을 선택-훈련-습관화하는 것입니다. 자발적 사랑의 훈련, 사랑의 습관입니다. 바로 제2독서에서 데살로니카 신자들은 바오로와 그 일행의 사랑을 보고 배웠음이 분명합니다. 바오로의 기쁨의 고백이 이를 입증합니다.

“여러분은 큰 환난 속에서도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들여, 우리와 주님의 사랑을 본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모든 신자에게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여러분에게 시작되어 널리 울려 퍼졌으며, 여러분의 믿음은 곳곳에 알려졌습니다.” 

사랑은 아무나 하나? 사랑밖에 길이, 답이 없습니다. 평생 배워야 하는 사랑공부요 사랑에는 영원한 초보자입니다. 하느님을 갈림없는 전 존재로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결코 사랑공부와 사랑실천에 지치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바로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이런 사랑에 항구할 힘을 주십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