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페4,32-5,8 루카13,10-17
주님과의 만남; 존엄한 품위의 회복
“빛의 자녀답게 삽시다”
“행복하여라!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밤낮으로 그 가르침을 되새기는 사람.”(시편23,1-2참조)
어제 강론중 빠트린 중요한 내용을 추가합니다. 하느님을 온 마음으로 사랑함과 더불어 이웃을 내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이중계명에 내 자신 사랑을 추가해야 하니 결국은 <사랑의 3중 계명>입니다. 자기를 소홀히 함부로 대하거나 자학하지 말고, 존엄한 품위의 사람답게 살도록 자신을 잘 돌보고 가꾸는, 건강하고 건전한 <자기 사랑>입니다.
이것은 이기적 자기 사랑이 아니라 하느님 자녀로서의 마땅한 사랑의 의무입니다. 정말 자기를 사랑한다면 탐욕대로 막 살지는 않을 것입니다. 누구나 원하는바 자유롭고 행복한 내적 부요의 삶입니다. 28년 전 자작시 두 편을 인용하니 참 놀랍고 반갑습니다.
“환히 트인 배밭 사이 마사토 텅 빈 길
모두의 길 되어 살 수는 없을까
누구나 편히 지나
주님께 이르는 텅 빈 길 되어 살 수는 없을까
온갖 생명 품에 안고 키우는
大地의 넓은 가슴 되어 살 수는 없을까
답답한 가슴 환히 트인 길 되고
좁은 가슴 大地의 넓은 가슴 됐으면 참 좋겠다”<길과 가슴;1998.12.16.>
“넓은 하늘과 대지가
집이자 일터 놀이터인 새들은
참 부자다 자유롭다
행복하다
무소유의 자유요 기쁨이다”<무소유; 1998.12.17.>
모두가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희구하는 詩입니다. 오늘 옛 현자의 지혜도 이런 삶의 추구에 좋은 도움이 됩니다. <사업가>보다는 <예술가>쪽으로 관심을 기울였으면 좋겠습니다.
“예술은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시인은 시를 쓸 수 밖에 없는 순간이 오기 때문에 시를 쓴다.”<다산>
사실 마음 깊이에서는 누구나 <사랑의 수도승이자 시인>입니다.
“시로써 감성을 풍부하게 하고, 예로써 바로 서고, 음악으로써 완성한다.”<논어>
이래서 시詩와 예禮와 악樂을 함께 어울려 전인이 되게 우리 가톨릭교회의 공동전례기도가 참 자랑스럽고 고맙습니다. 명실공히 명품종교, 명품신자를 만드는 시편 성무일도와 미사의 공동전례기도 은총입니다.
살아 계신 주님과 만날 때 영육의 치유와 더불어 존엄한 품위의 인간으로서의 회복입니다. 오늘 복음의 등굽은 곱사등이 여자를 안식일에 고쳐 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고 계실 때, 예수님은 18년간 병마에 시달리던, 허리가 굽어 도저히 펼 수 없는 여자를 목격한 것입니다.
등 굽은 곱사등이 여자가 상징하는바 우리 모두입니다. 정도의 차이일 뿐, 모두가 나름대로 이런저런 사유로, 즉 무지, 불안, 두려움, 걱정, 마음의 상처, 열등감등 심신의 병으로 <마음의 등굽은 사람들>입니다.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날 때 근원적 치유입니다.
“여인아, 너는 병에서 풀려났다!”
말씀하시며 주님께서 그 여자에 손을 얹으시니 즉시 <똑바로 일어서서 하느님을 찬양>합니다. 그대로 부활을 상징하는 참 아름다운 장면입니다. 하느님 찬양의 삶이 존엄한 품위의 삶에 얼마나 졀정적인지 깨닫습니다.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남으로 병마에서 해방되어 존엄한 품위의 삶을 회복하니 그대로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을 상징합니다. 시비를 거는 회당장의 항의에 예수님의 답변이 참 통쾌합니다.
“아브라함의 딸인 이 여자를 사탄이 무려 열여덟 해 동안이나 묶어 놓았는데, 안식일일지라도 그 속박에서 풀어 주어야 하지 않느냐?”
예수님의 모습은 그대로 자비하신 하느님의 모습입니다. 결국 판단의 잣대는 예수님이요,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물으면 답은 자명합니다. 예수님을 만나 병마에서 치유되어 자유로워진, 존엄한 품위를 회복한 여자요, 적대자들은 망신을 당했지만, 편견 없이 주님의 치유를 목격한 군중은 모두 그분께서 하신 그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두고 기뻐합니다. 결국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주님과의 만남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우리를 격려하며 용기백배 힘을 줍니다.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날 때 치유요, 참으로 존엄한 품위의 인간다운 삶입니다.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사랑받는 자녀답게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스도 예수님처럼 사랑 안에서 살아가라는 바오로 사도를 통한 주님의 간곡한 조언입니다. 이어지는 주님의 말씀도 참으로 적절합니다.
“불륜이나 온갖 더러움이나 탐욕은 입에 올리는 일조차 없어야 합니다. 추잡한 말이나 어리석은 말이나 상스러운 농담처럼 온당치 못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감사의 말만해야 합니다.”
시공을 초월한 주님의 다음 긍정적 말씀은 더욱 고무적입니다. 그대로 오늘 우리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한때 어둠이었지만 지금은 주님 안에 있는 빛입니다.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십시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마음의 굽은 등을 똑바로 펴주시고 하느님을 찬양하며 빛의 자녀답게 살게 하십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같아, 제때에 열매 맺고,
잎이 아니 시들어, 하는 일마다 모두 잘되리라.”(시편23,3). 아멘.

